“이 ‘보노보’들은 ‘침팬지’ 경제학의 돈독을 씻어 내고, 무한 경쟁으로 생겨난 사회적 빈틈을 메우며, 벼랑 끝에 내몰린 사회적 약자들에게 자활의 손길을 내민다. 또한 시장에 뛰어들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하고, 사회적 유익을 극대화한다.”
 <보노보 혁명> -유병선 저

책에는 두 종의 유인원 이야기가 나온다. 침팬지는 우락부락하고 야심만만하며 폭력적이다. 반면, 보노보는 평등과 평화를 추구하며 낙천적인 천성을 지녔다. 저자는 침팬지를 인간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성으로, 보노보를 인간의 연대하고 공감하는 본성에 비유한다. 그러고는 세상을 바꾸고 사회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침팬지 보다는 보노보의 속성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적경제를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유인원 이야기가 나와 의아하겠지만, 이 이야기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은유이다. 성장과 효율만을 강조해 온 침팬지경제가 파생한 문제를 사람과 협동을 중심에 두는 보보노 경제, 바로 사회적경제로 풀어보자는 의미다.

양적성장의 병폐 속 떠오르는 포용적 성장

사회양극화의 병폐는 한국사회, 그리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신자유주의가 지향해 온 양적성장 정책이 낳은 결과다. 우리 제주 또한 과거에 겪어보지 못한 다양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인한 주거, 교통, 각종 환경 문제를 비롯해 청년, 경력단절 여성, 퇴직한 중장년층 등의 일자리 문제까지 일일이 나열하기 조차 벅차다. 이처럼 시장경제 시스템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승자독식의 시스템이 아닌, 사회적 배제를 해결하는 지속가능하고 혁신적인 그리고 포용적인 성장동력로써 말이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문제, 사회적경제로 풀자

사회적경제는 지역공동체 구성원들의 공동이익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제활동이다. 생산, 유통, 교환, 소비 등의 경제활동 전반에 호혜와 연대의 가치를 반영하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사회적경제는 모두가 바라는 따뜻한 일자리, 차별과 배제를 해소하는 복지, 지역문화 활성화와 환경보전, 생활공동체 복원과 같이 지역을 살리는 솔루션을 만들어 낸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시장경제가 제공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우리 이웃의 필요와 욕구를 해결한다. 대표적 형태로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농촌공동체회사 등을 들 수 있다. 이미 유럽과 일본, 캐나다 등지에서는 1980년대부터 신자유주의가 낳은 문제들을 국가와 지역공동체가 함께 해결하는 대안으로 사회적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사회적경제,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다

한 가지 사례를 보자.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사회적경제 성공모델인 협동조합 몬드라곤. 그곳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불황은 빗겨나가지 않았다. 경제 위기로 인한 매출감소와 고용감축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고용을 포기하고 투자를 줄였지만, 몬드라곤의 대처는 달랐다. 몬드라곤은 협동조합의 특성인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를 통해 산업재편과 인원 재배치를 택했다. 해고가 아닌 상생, 자본이 아닌 사람을 위한 선택이었다.

결과는 어떨까. 몬드라곤은 이후에도 기업목표인 ‘고용창출’의 기조를 꾸준히 견지했고, 이는 조합원들 간의 공동체성을 강화했다. 질좋은 일자리를 제공 받은 조합원들은 분배받은 이익을 지역사회로 흘러 보냈다. 지역과 기업 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갔다. 이후에도 몬드라곤은 여러 경제적 환경 변화에 사회적경제만의 방법론을 통해 대응했다. 몬드라곤 에뉴얼리포트(2014년 기준)에 따르면, 오늘날 몬드라곤은 스페인 전체 GDP의 10%를 생산하며 10대 기업 가운데 하나에 속했고, 약 8만명에 이르는 고용, 118억 유로(약 16조원)의 매출을 내고 있다.

제주는 사회적경제시범도시 지향

우리나라의 정책도 사회적경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함께 일자리 창출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우며, ‘고용을 품은 성장’을 위해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의 사회적경제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조직개편에서 일자리 수석실 산하에 사회적경제 비서관(1급) 자리를 신설했고, 기획재정부에서도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한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구체적인 정책 실행 방안을 만들기로 했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질좋은 일자리 창출에 적극적인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대거 육성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4월 17일 열린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 개소식에서 테이프커팅을 대신해 ‘묶인 매듭을 풀고 상생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의 손수건 풀기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민선 6기 제주특별자치도 또한 ‘제주의 가치를 키우고 경제성장의 효과가 도민 속으로 스며드는 포용적 성장’이란 도정 방침을 세우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경제 기반 구축을 핵심 공약으로 설정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사회적경제 종합발전계획에서는 매력있는 일자리 확대를 통해 2020년까지 사회적경제 부문의 일자리를 전체 고용의 2%까지 확장하겠다는 목표가 제시돼 있다. 민간 차원에서도 이렇게 도정이 추구하고 있는 ‘사회적경제시범도시’의 모델을 단순한 경제의 한 부문이 아닌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성장을 위한 지역발전 패러다임으로 바로 보고 있다.

지속가능한 사람중심 경제공동체 만들 것

이런 정책 기조와 함께 지난 4월 제주사회적경제지원센터가 개소했다. ‘사람중심의 수눌음경제 공동체 제주 구현’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매력있는 경제 성장’, ‘안정적 일자리 확대’, ‘지역공동체 복원’을 위한 사업들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사실 제주의 사회적경제는 그간 중앙정부와 자치단체의 행ㆍ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외형적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그러나 그에 걸맞은 내실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자생력을 갖춘 사회적경제 기업을 몇곳을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여전히 시장경쟁력이 미흡하고 수익성과 안정성도 낮아 지속적 성장의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센터는 지역에 사회적경제의 종합생태계 조성에 힘을 집중할 예정이다. 지역 내에 사회적경제의 기초를 다져 지속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원센터는 민간 사회적경제 조직과 자치단체, 각계각층의 단위를 연결하는 민관협력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도민들에게 사회적경제를 알리고 참여도 이끄는 공감프로젝트와 아카데미사업도 진행한다. 개별 사회적경제 기업들의 역량강화를 위한 홍보ㆍ마케팅ㆍ회계 부문 등의 경영지원은 물론 공급생태계 역략강화를 통한 공동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에도 힘쓴다. 무엇보다도 제주 지역문제에 기반한 혁신적 아이템을 개발하고 지원해, 지역솔루션으로서의 사회적경제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있다.

제주문화 속 사회적경제, ‘수눌음 문화’

“예로부터 제주에는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도 서로간의 신뢰와 품앗이, 그리고 상호부조를 통해 어려운 시절을 극복했던 공동체 문화, ‘수눌음’이 있었습니다. ‘수눌음’이야말로 신뢰와 협동을 바탕으로 청정 자연과 제주다움을 지키면서, 지속가능한 경제를 보듬어 왔던 우리 사회적 경제의 고유한 전통입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자산으로 우리는 도민행복, 세대활력, 동반성장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주형 사회적 경제, ‘수눌음경제공동체’를 지향하고자 합니다.”
 <2015 제주사회적경제 비전선언>

제주 사회적경제인들의 선언이다. 많은 도민들에게 사회적경제라는 개념이 낯설지 모르겠지만, 우리 제주의 전통 속에는 이미 사회적경제와 맥락을 같이하는 문화, 바로 ‘수눌음’이 있었다. 제주다움을 되살리는 경제, 지역공동체성과 신뢰기반의 문화를 만드는 경제, 사회적경제가 만들 제주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