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위로<9> 샘이 있는 삼의양오름

지난 겨울 삼의양오름 서쪽 등반로 입구의 모습이다. 삼의양오름에서 삼의는 하늘, 땅 사람을 가르키는 세가지 근본을 말한다.

◇ 삼의(三義), 세 가지 정의

“정의를 지혜, 용기, 절제라는 세 가지 기본 덕복이 조화를 이룰 때 성립되는 최고의 덕목으로 보았던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공정성으로서의 정의(justice as fairness)’를 논했던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에서는 정의를 경제ㆍ사법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왔다. 그렇다면 동양철학에서의 정의 개념은 무엇을 중심으로 두고 있을까? 동양사회에서 이야기되던 정의는 지금 받아들여지고 있는 서양사회의 정의와 분명 많은 부분에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공자가어>에는 의로써 생산한 이익을 통해 백성을 공평하게 해야 한다는 부분이 등장한다. 즉 동양사회에서의 정의 역시 분배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이태 전에 출간된 <무엇이 의로움인가>에서는 이렇게 서양과 동양의 정의를 비교했다. 정의와 justice가 이렇게 같고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둘을 이렇게 비교해야 할 이유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세 가지 의로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름으로 오르는 길에 문득 의로움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 새미오름에서 삼의양오름으로

아라동 산24-2번에는 산 정상에서 샘이 솟아나와 ‘새미오름’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삼의양오름이 있다. 기록에는 삼의양(三義讓), 삼의양악(三義讓岳), 삼의악(三義岳)으로 표기되어 있다. 1653년 이원진이 쓴 <탐라지(제주목 산천)>와 일제강점기의 지도 등에는 ‘삼의양악’, <탐라순력도>에는 ‘삼의양악(三義壤岳), 삼의양악(三義陽岳), 삼의양악(三義讓岳)’으로,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제주삼읍총지도>에는 ‘삼매양악(三每陽岳)’, <제주삼읍전도>에는 ‘삼의양악(三義陽岳)’, 1899년의 <제주군읍지> 제주지도에는 ‘삼양봉(三陽峰)’으로, 주변의 비석에는 ‘삼의악(三義岳), 사미악(思味岳)’ 등으로 표기하였다. 현재의 지도에는 ‘삼의양오름’으로 표기하고 있다. 전하는 말에는 이 오름의 모양이 벼슬아치들의 예복이었던 ‘사모관대’ 가운데 사모(紗帽)를 연상시키는 까닭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도 한다.

이 오름의 표고 574.3m, 비고 139m, 둘레 2,473m, 면적 41만 2,000㎡, 저경 725m이다. 한라산 북녘 자락의 해발 400m 지대에 있기 때문에 비고가 높지 않으나, 오름 정상에서는 북쪽으로 제주시가지 너머 아늑한 수평선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 남쪽으로는 한라산 정상, 서남쪽으로는 한라산의 명혈인 개미목까지 이어진다. 원형의 산정분화구 서남쪽 사면에는 오름의 이름이 유래한 샘이 솟아나고, 용암 유출 흔적이 있는 작은 골짜기가 형성되어 있다. 남사면의 골짜기에는 자귀나무 등이 잡목과 어우러지고, 곰취와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다. 동사면은 완만한 경사로 해송(海松)이 서식하고 있다. 이런 모양으로 보건대 새미를 한자음으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삼의(三義)와 ‘사모’에 관련된 이야기가 덧붙은 것으로 짐작된다.

◇ 한라산의 병풍, 안산 새미오름과 삼의교

이 오름은 제주대학교 후문에서 산천단을 지나 서귀포 방향으로 5ㆍ16도로를 오르다보면, 산록북로(제1산록도로) 갈림길에서 남쪽으로 보이는 큰 오름이다. 여기에서 동쪽과 서쪽으로 이 오름에 오르는 길을 정할 수 있다. 우선 동쪽으로 오르는 길은 갈림길에서 서귀포 방향이다. 남쪽으로 약 1Km 오르막을 오르면 오른쪽으로 제주지방경찰학교 입구가 나온다. 경찰학교 입구에서 130m쯤 들어가면 오름 입구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에 차량을 세워둘 수 있다. 안내판 안쪽으로 140m 정도 들어서서 서쪽으로 들어가면 오름으로 올라가는 등반로가 나온다. 이 등반로를 따라 20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서쪽으로 오르는 길은 관음사, 탐라교육원 방향이다. 약 780m를 오르면 길 동쪽으로 철문이 세워져 있는데, 그곳에서부터 등반로가 시작된다. 철문 옆으로 들어가서 숲이 우거진 산책로를 따라 걸어 들어가면 오름 남쪽의 목장이, 목장을 가로질러 오르면 정상으로 향하는 등반로가 나온다.

서쪽으로는 오르는 길의 오름 입구 안내판에는 풍수지리 형국설을 빌려 “삼의악 남측 하문형으로 한라산으로 이어지는 대문인 한라산의 조산으로 중요한 혈을 형성한다.”는 설명이 써져 있다. 여기서 ‘하문(下門)’이라고 표기한 것은 ‘음문(陰門)’ 또는 ‘옥문(玉門)’으로도 쓰이는데, 풍수지리에서는 여성의 외부생식기를 가리킨다. 대개는 묘자리를 쓸 때 나왔던 곳으로 되돌아간다는 뜻에서 자궁이 위치한 곳과 유사한 지형을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 정상에서 샘이 나오는 것까지를 감안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렇게 보면 이곳 자체가 사실상 명당(明堂)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지만, 한라산을 명당으로 본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거리나 위치상으로 혈 앞의 멀고 높은 산을 가리키는 조산(朝山)이라기보다는 귀인이 안전에 앉아 처분하는 것과 같다는 뜻을 가진 가깝고 낮은 산을 가리키는 안산(案山)이 더 어울린다. 안산은 명당, 곧 묘터를 가려주는 병풍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제주지방경찰학교 입구를 지나 제주국제대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삼의교(三義橋)가 있다. 이 다리는 1963년 5ㆍ16도로를 개설할 때 만든 14개 교량 가운데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79년 1월 인근에 새로운 다리가 만들어지면서 기능을 다했지만, 1960년대 교량건축의 실례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시설물로 평가된다. 길이 12m, 폭 6.2m인 철근 콘크리트 교량으로, 당시 5ㆍ16도로 건설에 참여한 삼부토건에서 건설했다. 일일이 물과 자재를 싣고 와서 현장에서 콘크리트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국제대학교는 제주산업정보대학 시절부터 삼의축전을 개최하고 있는데, 1980년대에는 제주대의 아라축전, 제주교육대학의 사봉축제, 제주간호보전전문대학의 하이지나 축제 등과 함께 대표적인 제주청년문화운동으로 유명했다. 그밖에 오늘날 제주에서 삼의(三義)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문화 유적으로는 대정읍 인성리 네거리의 삼의사비(三義士碑)를 손꼽을 수 있다. 이재수의 난으로 알려진 신축교난(辛丑敎難)의 세 장두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 정의가 샘처럼 흐르는 일상

삼의오름을 내려서는 길에 문득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기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정의는 충분하다 못해 과잉’이라는 생각 탓이다. 매일, 매순간의 일상이 감시받고, 벌거벗기며, 통제받는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가려지고, 은폐되며, 통제되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랄만한 일은 그렇게 경이로운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술력을 더 개발해야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가 될 것이라는 허구를 우리 모두가 진실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가리키는 세 가지 근본인 삼의(三儀), 그리고 삼원(三元), 삼태극은 있어도 세 가지 의로움이란 애초에 없다. 역학에서 말하는 삼의(三義)도 세 가지 뜻을 가리킨다. 역(易)이란 첫째로는 간단하고 쉬운 논리[簡易]이고, 둘째로는 모든 것이 변하여 바뀐다[變易]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셋째로는 이게 사람 사는 방식이라는 것은 바뀌지 않는 진리[不易]라는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시하고 통제하는 기술력의 발전이 아니라, 가릴 것은 가려주는 병풍 오름처럼 스스로의 인간다움을 회복하여 서로를 신뢰하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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