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이미지에다 정통 서정의 분위기 돋보여

현택훈 시인

좋은 작품들이 많아서 심사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백록문학상은 제주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학 문학상이다. 이번 백록문학상 시 부문에서 제주문학의 미래를 밝게 하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황희영(초등교육 4)의 시 「칼튼 힐에서」나 「태풍이 불면」은 학생다운 시였다. 기성의 시를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색깔로 시를 쓰는 점이 신선했다. 하지만 다른 응모작들이 너무 평범해서 수상권에서 제외됐다. 부디 그 순수함에서 나오는 매력적인 사유를 잃지 말기를 바란다.

문보미(영어영문 4)는 제주의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은 시를 보여주다가 아주 새로운 이미지의 시를 보여주는 시도 있어서 믿음이 갔다. 시 「짚신할아버지별」은 문학에 대한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문학상이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그의 시 「기억박물관」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시 「기억박물관」에서 “아이가 발에 채는 기억에 올라앉아 물었다”나 “날카로운 건 눈이 부시더라”라는 등의 표현이 남다른 이미지로 가는 과정으로 괜찮았다.

김영원(국어국문 4)은 응모작 중 「방화」, 「식물의 일기」, 「너를 나라고 부를 때」 등이 수작이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시 「방화」는 건기의 개연성이 잘 살아있고, “종이로 만들어진 폐/쉽게 펄럭이는 호흡”이라는 표현이 시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던지듯 삶에 대해서 피력하면서도 압축을 놓치지 않는 모습에 감탄했다.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면서도 정통 서정의 분위기를 잃지 않는 점으로 보아 앞으로 좋은 시를 많이 쓸 것으로 예상된다. 제주 문학에서의 활동이 기대되는 신인의 탄생을 미리 본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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