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기에 작위적 글쓰기 경계해야

이번 백록문학상 소설 부문 응모작은 모두 4편이다. 예년에 비해 소설 부문 응모작이 적어 아쉬움이 컸다. 응모작들을 읽으면서 소설, 특히 단편소설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를 꾸며 낸다고 소설이 되지 않는다. 서사가 소설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임에는 분명하지만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해서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단편소설은 장편과 다른 소설적 문법을 지니고 있다. 단편소설은 일상의 찰나적 단면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삶의 이면을 드러내야 한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메타포가 없는 소설은 신변잡기와 다르지 않다. 메타포는 시의 전유물이 아니다. 소설은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가공의 세계를 통해 독자들은 세계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단편소설에서 메타포는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강력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또 소설을 쓰게 만드는 강력한 힘은 자기 자신이다. 습작기에는 ‘나’라는 1인칭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소설은 ‘나’라는 자아가 세계와 만나는 삶의 형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습작기에는 일부러 이야기를 꾸며내려는 작위적 글쓰기를 경계해야 한다.

응모작 중에서 ‘악몽’과 ‘어떤 새가 사랑을 하는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에 치중하다보니 왜 그런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설득이 다소 부족했다. 작위적 글쓰기의 함정에 빠져서 소설적 개연성이 떨어지는 실수를 빚어 아쉬웠다. 간간이 빛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야기가 중언부언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NINE’과 ‘땅’이었다. ‘땅’은 ‘땅’이라는 상징을 통해 현실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가의 자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시종일관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어 자의식의 과잉이라는 점이 눈에 거슬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밀고 간다는 점은 장점이었다. 하지만 허술한 단락구성과 일부 문장에서 드러나는 비문은 아쉬움이 컸다.

‘NINE’은 진학을 앞둔 고등학생의 고민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응모작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서사가 진행되는 작품이었다.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밀고 나가면서도 열아홉살이 직면한 고민을 비교적 정확한 문장으로 전개하고 있는 점이 돋보였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인물에 대한 단편적 묘사는 아쉬운 대목이었다. 소설 속 소설로 인용되고 있는 대목도 과연 이 소설에서 개연성을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소설 쓰기도 중요하지만 한국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작품을 면밀하게 읽어갈 필요가 있다. 고민 끝에 ‘NINE’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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