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섬’ 소록도 봉사활동 체험수기

소록도 봉사활동에 참여한 봉사자들이 7월 22일 낮 예초기를 들고 마을을 정돈하고 있다.

지난 7월 중순, 천주교 제주교구의 인솔 하에 217명의 봉사자들이 소록도로 3박4일간의 여정을 떠났다. 4일은 세상에 온정이 남아있는 걸 확인하기에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약 34년 전, 제주도의 몇 천주교 신자들이 배를 타고 남해안의 한 자그마한 섬에 도착했다. “문둥이들이 득실대는 곳에 왜 사서 고생을 하러 가냐”, “가서 혹여 병이나 걸려오지 마라” 등 숱한 비난을 들으며 그들이 향한 곳은 이른바 ‘천형의 땅’, 소록도였다. 그들이 소록도에 간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응은 냉담했다.

해외원정봉사, 재력가들의 기부 등이 봉사였던 시절, 그들은 ‘나환우의 희망’을 외치며 소록도로 향한 것이다.

주위에서는 ‘귀양을 사서 간다’는 등 말들이 많았다. 이렇게 수없이 깎아내려지고 비난 받으면서도 그들은 몇 번이고 소록도로 떠났다.

그들과 소록도가 함께한 34년, 소록도는 ‘천형의 땅’이라는 흉한 이름이 아닌 ‘희망의 섬’이라는 아름다운 새 이름을 얻었다. 7월 20일부터 23일까지 희망의 섬에서의 3박4일, 이제 한 번 그 여정을 떠나보도록 하자.

◇하루 앞선 출발

기자는 217여명의 봉사자들의 생활공간을 꾸리러 하루 앞서 선발대로 출발했다. 7월 19일 오후 9시 30분 즈음 4년 만에 다시 소록도 땅을 밟았다.

4년 전의 고등학생이 어느덧 대학생이 됐건만 소록도는 변함없이 푸근한 곳이었다.

217명분의 생필품과 식자재, 모기장 등은 무려 3대의 트럭에 실려 도착했다. 정리와 설치에만 자그마치 3시간이 소요됐다. 긴 여정으로 인해 이미 녹초가 됐건만 짐을 보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게으름을 피웠다간 217명의 생활이 순식간에 엉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자는 새벽 1시에야 비로소 잠들 수 있었다.

◇우리 아들딸, 1년간 잘 지냈니?

7월 20일 저녁 10시, 크고 작은 버스 2대가 217명의 봉사자를 숙소로 데려왔다. 조용한 소록도가 3박4일간 활기를 띄는 순간이다. 이 날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근 주민들이 마중을 나온다. 서로 인사도 나누고 그동안의 안부도 묻는 시간을 가지며  어느덧 봉사자와 주민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주민들이 봉사자를 부르는 호칭은 참 애틋하고 정답다. 아들, 딸, 이모, 삼촌… 모두가 소록도라는 ‘한 가족’이 된다. 3박4일간 서로 다투기도 웃기도 하며 보낼 정겨운 3박4일, 34번째 여정이 드디어 막을 올렸다.

◇소박하지만 큰, 놀라운 기적

“소박한 베풂이 우리한테는 큰 기적이 되.” 한 소록도 할아버지의 말씀이다. 병으로 얼굴은 찡그러지셨지만 그 틈에도 미소만큼은 배어나온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은 “찡그리는 데는 얼굴 근육이 72개나 필요하나 웃는 데는 단 14개만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때로는 예외도 있는 법이다.

‘제주도 천사들’의 도움을 34년간 받고 계신다는 할아버지께선 소싯적에 봉사자들과 같이 일하기도 했다 하시며 헐고 바란 앨범을 뒤적여 30년 전의 필름 사진을 보여주셨다. 소록도와 성 다미안회가 함께해온 궤적을 어렴풋이나마 그릴 수 있었다.

“사실 난 기적을 믿지 않았어. 본 적이 없었거든. 그런데 알고 보니 기적이 꼭 거창하지만은 않더라고. 성 다미안회를 보면서 소박한데도 큰 기적이 있다는 걸 느꼈어.”

할아버지의 기적은 큰 게 아니다. 웃으며 매일을 시작하고 마음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이게 할아버지의 기적이다. 그 삶이 깃든 소박한 미소, 이 미소가 봉사자들을 매번 소록도로 다시금 부르는 게 아닐까.

◇어떠한 상황에도 미소를

소록도에서의 봉사는 고행에 가깝다. 35도를 넘나드는 더위와 끊임없는 일. 몸은 한계를 향해가고 지쳐 녹초가 되지만 어느 누구도 쉽사리 웃음을 잃지 않는다. 소록도 봉사단은 매해 두 번 못할 고생을 한다. 찌는 더위에 예초기를 들고 거리를 정돈하고, 간식을 여기저기로 나르며, 마을을 넘나들어 말동무가 되기도 한다.

지칠 법도 하지만 누구도 불평 않고 묵묵히 일한다. 올해 봉사에 참여한 제주대학교 학생은 그 원동력으로 “이웃들을 돌아보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금 뒤돌아보는 것”이라는 해답을 내놓았다. 내가 조금 더 힘들면 주민들이 1년을 편하게 보내기에 당장 힘들다고 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이 있기에 소록도 봉사자들이 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다음에 또 봅시다, 반드시

3박4일은 예상 외로 짧게 흘러간다. 정든 만큼 시간이 흐른다는 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마지막 밤, 모두 웃고 있지만 가슴 한편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다시금 자리 잡는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가 아쉬운 사람도 있고, 친해진 주민 분과의 다음을 확실히 기약할 수 없기에 아쉬운 사람도 있다.

봉사자들과 주민들은 “안녕히 가세요”가 아닌 “내년에 다시 봅시다”라며 반드시 다음을 기약한다. 그들에게 영원한 작별은 없다. 언제고 다시 올 만남만이 있을 뿐이다.

◇밀려오는 여운

7월 23일 일요일, 217명의 봉사자들이 여정을 끝마치고 제주항에 도착했다. 몇은 내리며 아쉬운 듯 소록도가 있는 방향을 다시금 돌아본다.

한 봉사자는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소록도에서 보낸 3박4일은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을 것”이라며 “봉사는 내 스스로가 치유 받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느낀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3박4일은 세간의 기준에서 본다면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세상에 온정이 남아있는 걸 확인하기에는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혹자는 가끔 치열함과 아름다움은 공존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했지만 때로는 예외도 있는 법이다.

소록도는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30년 후엔 더 이상 주민이 살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다.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늦기 전에 한 번쯤은 소록도에 사랑을 전하고 와도 괜찮지 않을까. 잠깐의 4일이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할 것이다.

삶에 지쳐가는 이들에게 소록도를 다녀오기를 권하고 싶다. 새로운 경험과 감동을 선물 받는 것은 물론, 아픔의 세월을 긍정의 시각으로 살아온 주민들에게 삶을 배우는 건 다시 없을 소중한 경험이 될 테니까.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