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인 적, 나 자신, 행동하려는 의지와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이겨내려는 인내와 포기하는 마음, 선행하려는 용기와 뒤로 물러나 관전하는 모습. 수많은 선택, 그에 앞서 갈리는 두 가지 극적인 모습간의 대립. 삶의 매 순간은 이러한 선택=대립=싸움들로 가득 차있다.

이 선택을 좌우하는 것은 선택에 대한 나의 욕구가 어느 쪽으로 더 향하는가, 어느 선택이 지금 내가 해야 할 선택인가, 어느 것이 내 신념과 맞는 것일까, 어느 쪽이 더 편한 선택인가 등의 이유들이다. 갖가지 욕구와 이유들에 의해서 순간의 행동들이 선택되고 이루어진다. 지금 내가 컴퓨터에 앉아서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그러한 선택들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선택을 싸움이라 정의한다면, 그 싸움에서 승리한다는 건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 걸까? 내게 선택된 것이 승리했다고 봐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선택에 의해 내게 돌아오는 결과물이 좋은 것이야 승리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결과물이 좋은 것인지 그렇지 못한지는 어떻게 정의하지? 그리고 언제 정의할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그건 누가 정의해주는 것인가?
이미 수세기동안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루어져왔다. 많은 사람들이 삶에 대해 고찰해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해왔다. 그리고는 삶에 정답은 없다 말한다.

삶의 정해진 모습은 없다. 거의 무한의 선택들로 이루어져 있는 게 삶의 모습이니까.

그렇지만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상대적인 척도는 존재한다. 가령 내가 누군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한다면 그건 나의 룰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설정한 룰에서 그 사람의 마음에 들 만한 행동들을 해야겠지. 그렇다면 내 선택은 내가 선택한 목적에 의해서 마땅히 행동해야 될 상대적인 척도가 생긴다. 그 순간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권한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게 되니까.

본래 사람은 모든 순간 제가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어떤 선택이든 자기가 원한다는 이유하나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가능한거지. 근데 그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원한다는 이유로 그것을 행한다면 문제가 되겠지.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이기적인 인간으로 질타 받고 멸시당할 것이다. 사회 속에 만들어진 척도에 의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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