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위로<10> 제주대학원에서 거점국립대학 제주대학교까지(상)
제주향교 명륜당에서 시작한 제주대학원에서 도립제주대학까지

(구) 제주대 본관의 모습이다.

◇ 대학이란 무엇인가

지난 7월 제주대학교 인문대학 교수 19명은 “우리는 왜 대학의 회복을 바라는가!”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학이 ‘무엇’이고, ‘왜’ 있어야 하며, ‘어떠해야’하는가를 물으면서 ‘누가’ 대학을 ‘어디서’ 붕괴시키고 있는지, 그래서 ‘언제’ 회복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였다. 주요대학의 인문대학에서 잔잔하지만 묵직한 반향을 일으켰던 이 질문은 우리 시대 고등교육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의 요구다. 그 공감의 출발은 여지없이 ‘여기 지금’이어야 한다. 용담동에 있던 옛 제주대학 본관은 한국현대건축사의 큰 축을 이루었던 거장 김중업이 설계한 작품이다. 1967년 준공된 후 대학본관 및 도서관으로, 1979년 캠퍼스 통합이설 이후에는 야간강좌부와 부설학교 교육시설로 사용해 오다 1995년 7월 철거되었다. 현재 제주대학교 아라캠퍼스 역사자료실에 축적 50분의 1로 재현한 모형이 남아있다. 이런 역사를 돌이켜 보는 까닭은 앞으로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또한 문화가 주는 위로다.

◇ 제주대학원(濟州大學園)과 도립 제주초급대학

전쟁피난민이 남쪽으로 홍수처럼 밀려들던 1951년 2월 당시 문교부는 피난지 부산에서 ‘전시하(戰時下) 교육특별조치요강’을 제정, 발표하고, 부산과 제주도에 대학을 임시 운영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에 따라 국제대학의 전신인 한국대학 제주분교가 설치되어 법학과와 영문학과가 개설되었다. 교육 대상은 피난민과 제주출신의 대학지망생들로, 강의는 야간에 실시되었다. 피난 와 있던 역사학자 조의설(趙義卨), 한글학자 장지영(張志暎), 최근학, 시인 박목월, 방치화 등이 교수로 참여했다. 그 해 8월, 수복된 서울로 한국대학이 옮겨가자, 지역유지들이 9월부터 제주대학설립추진에 나섰다. 이들은 제주향교가 주체가 되어 대학을 설립하는 방안과 삼성시조(三姓始祖)재단에서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향교재단과 삼성재단이 재원을 출연한 도립제주대학설립이 추진되었다.

1951년 10월 향교재단과 삼성재단의 재원 출연이 의결되었고, 11월에는 제주도의 인가를 받아 제주시 용담동 제주향교의 명륜당에 제주대학원(齊州大學園)이 설립되었다. 당시 제주도 장학관이었던 문무겸(文武兼)과 강석범(康錫範), 현평효(玄平孝) 등이 주축을 이루었는데, 이 가운데서 문무겸이 원장이 취임하였고 문과와 법과를 설치하였다. 이때 제주대학원은 문교부의 정식인가를 받은 대학이 아니었지만 이듬해 제주초급대학이 설립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1952년 5월 2년제 도립 제주초급대학이 인가되어, 같은 해 8월 제주대학원이 있던 제주향교 명륜당에서 문을 열었다. 초대학장에는 당시 도지사였던 최승만(崔承萬)이 취임하였다. 당시 설치된 학과는 국문과, 영문과, 법과, 축산과로, 전임교수 7명과 학생 58명이었는데, 이듬해 9월에 제주농업고등학교 운동장에 설치된 가건물로 이전하였다.

◇ 4년제 도립 제주대학 승격

1954년 1월 제주대학후원재단이사회에서 당시 최승만 전지사의 후임으로 선임된 길성운 지사는 4년제 대학 승격과 대학 건물 이전을 추진하였다. 도민 기부금의 모금으로 당시 한국피혁공장 건물을 인수하였고, 11월 제주대학의 4년제 승격과 관련한 문교부 회신이 이루어졌다. 당시 문교부는 제주도가 그동안 4차례에 걸쳐 신청한 제주대학 4년제 승격 요청에 대해 상학과의 증설 요청을 삭제하고, 교무과, 학생과, 서무과 등 3개과의 설치와 기존 확보된 교육시설의 조속한 수리와 정비를 조건으로 한 승인을 회신하였다. 이에 따라 이듬해인 1955년 4월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고, 현재 사범대부속고등학교가 있는 제주시 용담동으로 이전하였다. 이 해 1월에 당시 이승만대통령이 지시했던 국립대학 이관은 2월 국무회의에서 충남대학과의 동시 국립이관에 따른 형평성과 재정 부담을 사유로 좌절되기도 했다.

제주대학의 국립 이관은 이듬해 제주도제 폐지문제가 대두되면서 4ㆍ19혁명 이후까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 1956년 10월 1일 제주대학장을 겸직하던 길성운지사가 학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국회사무총장과 국학대학장을 지낸 박종만학장이 후임으로 취임하였다. 박종만학장의 취임은 제주대학 설립 이후 최초의 전임학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그러나 부임 4개월만인 1957년 1월 28일 출장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다시 길성운지사가 학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이후 시설기준미달로 정비가 시급했던 제주대학은 제주농업고등학교와의 통합 모색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1958년 2월 19일 야간부 설치를 인가받았고, 1961년 12월에는 병설교육과를 설치했다. 병설교육과는 1968년 10월 26일에는 제주교육대학으로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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