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도 친숙한 미국드라마 ‘Glee’에 삽입된 노래로 두 개의 노래를 하나로 이은 곡이다. 각기 다른 두 노래를 붙인 만큼 이상할 법도 하지만, 부인과 이혼한 ‘윌’과 떠돌이 신세인 ‘에이프릴’이 각자의 이야기를 하듯 부르며 드라마의 스토리에 멋지게 녹아들었다.

첫 번째 노래인 One less bell to answer에서는 ‘대답할 초인종 소리가 하나 줄었고 요리할 계란도 하나 줄었네’ ‘챙겨야 할 사람도 하나 줄었어’라고 읊조리며 ‘행복해야 하는데 행복하지가 않아’라고 말한다. 또한 초인종이 울리면 여전히 대문으로 달려간다. 편해야 할 상황이지만 온종일 울며 하루를 보내고, 초인종이 울리면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일까 기대하고 신경 쓰는 상황이다. 이어서 노래는 a house is not a home 으로 전환된다. 제목이 참 은유적이다. 직역하면 ‘이 건물은 집이 아니야’쯤 될 것 같다. 가사는 굉장히 독특하게 시작한다. ‘A chair is still a chair. Even when there’s no one sitting there (의자는 여전히 의자야. 비록 아무도 앉아있지 않더라도)’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어떻게 보면 틀린 말 같기도 하다. 사물의 관점에서만 바라봤을 때 의자는 누가 앉아있지 않아도 의자가 틀림없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녀’의 관점에서 봤을 때도 그냥 의자와 누가 앉아 있던 ‘그’ 의자가 같을까? 사랑하는 이가 앉아 있던 의자는 그가 머물다 감으로써의미가 부여된 의자다. 그가 앉아있지 않은 의자는 더 이상 그녀에게 커다란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이어진 노래 가사는 더욱 더 직접적으로 상대방에게 애원한다. ‘Well I’m not meant to live alone. Turn this house into a home (난 혼자 살 수 없어. 이 집을 우리 집으로 바꿔줘)’ 앞에 언급된 ‘의자’의 개념이 이번에는 ‘집’으로 나타난다. 상대방이 함께하지 않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도 ‘집’이 될 수 없고, 단지 건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노래에서 나타난 ‘사랑’이란 불편함이 오히려 더 편해지는 것이었고, 김춘수 시인의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처럼 의미 없던 사물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었다.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와 의미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어쩌면 누군가의 삶에 의미를 주는 사람이 우리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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