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주는 위로<11> 한라산의 관문, 아라동의 마을들(상)

◇ 직립보행, 땅의 이치

직립보행을 통해서 인간이 얻은 것은 획기적인 것들이다. 도구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빼놓은 수 없는 것은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트라키아 출신 하녀에게 “세상의 이치를 궁리하신다면서 정작 눈앞의 고난을 못 보시는군요!”라며 조롱받았다는 서양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처럼 말이다. 동양철학에서는 앙관천문(仰觀天文)과 부찰지리(俯察地理)가 짝이다. 우러러 하늘의 천문을 보는 것과 굽어 땅의 이치를 살피는 것은 직립보행하는 인간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우리의 시선은 하늘로 향하고 있지만 발은 땅을 딛고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가 인간을 닮아 가장 영묘한 동물이라고 한 주자(朱子)의 말도 따지고 보면 “직립보행과 언어”다. 벗어나려고 애쓰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지표면 위에 살고 있다. 리(理)는 구슬에서 가로 세로로 길이 얽혀 만드는 결, 곧 공간을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마을은 사람이 찾아와 살면서 만들어지고, 그곳을 떠나면서 소멸한다.

◇ 제주대학교와 아라동 마을들

1970년대 제주대학교는 종합대학교 승격을 위해 시설확충이 필요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로 나뉘어 있던 캠퍼스 통합 이설을 위해 아라동 부지를 매입했다. 1979년 12월 농학부와 수산학부를 아라동으로 이설하면서 아라캠퍼스 시대가 열렸다. 2008년 3월에는 제주 교육대학이 통합 출범되면서 사라캠퍼스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사라캠퍼스는 제주시 일주동로 61(화북일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별도봉과 나란히 서 있는 사라봉의 이름을 빌려와 아라캠퍼스와 짝을 맞추었다. 아라캠퍼스는 제주시 제주대학로 102(아라일동)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시 용담로 65(용담동)에서 옮겨왔기 때문에 통합 이전에도 지금의 캠퍼스를 아라캠퍼스라고 불렀다. 아라캠퍼스가 위치한 아라일동은 법정동명이고, 행정동으로는 아라동이다. 아라동은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거쳐 서귀포로 향하는 관문이다.

아라동에는 아라(我羅)1동, 아라2동, 월평동(月坪洞), 영평동(寧坪洞), 오등동(梧登洞) 등의 법정동이 속해 있다. 2017년 기준 26개 통 132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고, 면적은 70.48㎢이다. 인구는 11,600세대 29,143명으로, 최근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농촌진흥청 난지농업연구소, 제주특별자치도 인재개발원, 소방교육대, 국립공원관음사지구, 산천단검문소, 양지공원 관리사업소, 향토예비군 아라동 동대, 제주지방해양경찰청 등 관공서가 위치해 있다. 특히 제주대학교 아라캠퍼스를 비롯하여 교육기관이 밀집되어 있다. 아라초등학교, 영평초등학교, 제주여자중학교, 아라중학교, 신성여자중학교, 신성여자고등학교, 제주중앙고등학교, 제주영주고등학교, 제주국제대학교, 제주대학교, 한국폴리텍대학 제주캠퍼스 등이다.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3개교, 고등학교 3개교, 대학캠퍼스가 3개이다.

◇ 한라산의 관문, 아라 1동과 2동

아라1동은 남쪽으로는 한라산, 북쪽으로는 이도2동을 경계로 뻗어 있다. 제주시에서 한라산을 횡단하여 서귀포를 오가는 관문인 셈이다. 제주대학교 근처에 천연기념물 제160호로 지정된 산천단 곰솔로도 유명하다. 그곳에 조선 성종 때부터 한라산신제를 지내던 제단인 산천단이 있다. 지금은 돌문화공원으로 옮겨간 탐라목석원에서는 ‘아라올레 지꺼진장’이 열린다. 농가 39.6%, 비농가 60.4%의 산업구조이지만, 최근 지속적인 도시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라2동은 서쪽으로 아라1동, 동쪽으로는 영평마을을 끼고 있다. 농가 85%, 비농가 15%의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감귤과 딸기 등을 재배하는 지역이다. 최근 아라동 개발 탓에 공동주택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예로부터 금천이라고 불릴 만큼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는 지역으로 유명하고, 금산공원이 위치해 있다.

아라1동은 『탐라순력도』에서는 ‘아라호(我羅好)’, 『제주읍지』에서는‘아라호리(我羅好里)’, 『제주삼읍전도』에서는 ‘아라리(我羅里)’로 표기했다. 지금의 법정동명인 아라동은 『제주삼읍전도』의 표기를 따른 것이다. 민간에는 아라위, 인다라(仁多羅) 등으로 불렸는데, 아라위와 인다라의 뜻은 명확하지 않다. 지금의 인다라마을은 군위 오씨, 담양 전씨, 경주 김씨가 이주하여 거주했던 곳이다. 아라2동은 『탐라순력도』에서는 ‘거마로(巨馬路)’, 『탐라지도』에서는 ‘걸마로촌(巨乙馬路村)’ 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걸머리’를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짐작된다. 걸머리는 ‘개울이 있는 마루’를 뜻한다. 『삼군호구가간총책』에는 ‘영남(寧南)’이라고 기록되었는데, 1905년 이후에 ‘영남리’가 ‘아라리’에 통합되면서 1955년에 행정상 아라2동이라 하였다. 1962년에 행정상 아라동에 속하면서 법정상 아라2동이 되었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