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8일 제주 신산공원에서 제1회 퀴어페스티벌(이하 퀴페)이 열렸다. 필자는 해당 축제에 참여하면서 3가지 부분에서 놀랐다. 

먼저 ‘제주’라는 특수한 지역에서 퀴페가 열린다는 사실이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퀴페와 같은 소수자 주체 행사가 이뤄지기 힘들다. 지역성이 강한 비수도권 지역의 경우 ‘전통’으로 표현되는 주류적 통념이 지배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타 지역에 비해 결코 낮다고 할 수 없는 지리적 폐쇄성을 지닌 제주가 아닌가. 역시 퀴페 반대 시위에서 종종 ‘전통 미풍양속’, ‘제주정서’와 같은 전통프레임을 씌운 문구를 찾을 수 있었다.

둘째, 반대시위 문구의 선정성이었다. 그들은 늘 그렇듯 ‘에이즈’를 논하며 동성 간 섹스는 욕망만을 위한 더러운 행위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에는 수많은 오류가 존재하지만 필자가 특히 놀란 것은 동성애-수많은 정체성의 스펙트럼을 제쳐두고 그들은 동성애만 논하였다.-를 바라보는 방식이 굉장히 선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동성애를 논할 때 반드시 섹스를 거론한다. 문제는 섹스만이 동성애의 전부인양 얘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욕망을 위한 섹스 자체의 혐오에 있다.

마지막으로 찬반을 나누는 행위이다. “나는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외침에 얼마나 많은 논점이 담겨있는지 살펴보자. ‘동성애를 찬반으로 나눌 수 있는 건지’,  ‘동성애 반대인지 퀴페 반대인지’, ‘동성 간 섹스만을 반대하는 건지’, ‘성소수자에 대해 아는지’ 등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논하면 ‘당연’한 것을 왜 이리 깐깐히 구는지 의문인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에 필자는 감히 “당연한 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보편’은 환경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혐오하기 전,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그 이유가 논점을 흐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름은 자유를 바탕으로 하며, 자유는 타인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유지된다. 혐오할 자유, 차별할 자유가 역설적인 이유는 그런 자유엔 타인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이다.

낯선 생각들이 오가며 이야기된다는 것만으로도 퀴어페스티벌은 하나의 공론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존재조차 부정당했던 성소수자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듯 앞으로도 수많은 다름과 그에 대한 담론은 그치지 않을 것이며 조금씩 자유롭게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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