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에서 깊은 인상을 주는 장면들 중 하나는 ‘정길’이 김 상사를 솥에 끓이는 장면이다.

정길은 영화 내에서 다른 이들의 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는 관찰자적 면모를 보인다. 그러던 그가 김 상사를 솥에 넣으며 “이제 그만 죽이세요”라는 말을 한다. 목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당연히 남자인줄 알았던 군인이 여성스러운 목소리의 남성인지, 실제 여성인지 헷갈릴 정도로 앳된 목소리다. 감독 인터뷰에서 오멸 감독은 이 배역을 맡은 이가 여자임을 밝혔다. 영화 속 군인들은 도민들이 폭도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대부분의 군인들은 상부의 명령에 따라 대부분 이를 이행하거나, 소극적 방식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부의 사람을 솥에 넣어 죽이는 방식으로 직접적인 저항을 택한 이가 영화 전반에서 가장 수동적인 태도를 취했던 ‘정길’이라는 사실이, 또한 그가 여배우라는 사실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진다. 4.3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7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 영상 내에서 4.3사건은 남성에 의해 발생ㆍ주도됐고, 과거가 재규명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여성의 활동과 경험은 사건 중이나 진상규명 과정에서도 주변적으로 처리되어 있으며, 여성의 주체적 인식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이어 이러한 기억의 선택, 이미지 형성, 스토리 구성이 여성을 수동적 피해자로 보는 남성적 시선과 이에 동의하는 관객 간의 협상에서 비롯되고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제주사회의 성별체제 변화 과정에서 여성의 경험ㆍ기억이 역사로부터 제외되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4.3 다큐멘터리에서의 젠더 이미지는 실제보다 이념이나 가치 등의 상징적 체제와 더 관련해 생산됐던 것이다.

이런 보편적 시각에 반하는 관점에서 가장 주체적인 인물인 ‘정길’이라는 군인을 여배우로 표현한 점은 다른 4.3 다큐멘터리에 비해 <지슬>이 차별화 되는 점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