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최대 미군기지의 땅, 평택 대추리를 가다
일제 패망 이후 건설된 평택 미군기지, 대추리를 두 번 울렸다
“주민 회유ㆍ이간질했던 정부와 미군 원망스러워… 고향 되찾을 것”

“그 날이 오면” 평택 대추리 주민들은 오늘도 미군기지가 철수하고 고향을 되찾을 ‘그 날’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인근 마을에 정착마을을 만들어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사진=대추리 평화마을 제공

대추리(大秋里). 이제는 사라진 마을이다. 마을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 이곳 마을은 황금들녘을 자랑하던 농촌마을이었다. 대추리라는 지명은 가을이면 넓은 들판에서 큰 수확을 거뒀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2003년 미군과 국방부가 ‘평택 미군기지를 확장하겠다’는 발표를 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대추리가 자랑하는 너른 들판, ‘황새울’은 사라졌다. 2010년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가 확장을 하면서다. 대추리 사람들을 만나려면 팽성읍 노와리로 가야 한다. 대추리에서 약 6km 떨어진 곳이다. 미군기지 확장으로 밀려난 주민들은 인근 마을에 정착촌 ‘대추리 평화마을’을 만들었다. 마을 입구에서 보면 이곳은 여느 시골마을과 다르지 않다. 마을 주민들 모두 평범한 시골사람처럼 보이지만 아픈 상처를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월 30일 대추리 평화마을을 찾았다. 마을로 들어가면 신종원 대추리 이장의 집이 먼저 보인다. 신종원 이장은 이날 벼를 탈곡하는데 한창이었다. 신 이장은 처음엔 대추리의 내력을 말하는 데 주저했다. 하지만 이내 담담하게 털어놨다.

“주민들을 회유하고 이간질하고 욕하면서 고향을 떠나게 했던 미군과 정부 관계자들…. 평화롭던 우리 마을을 산산 조각낸 사람들이 참으로 원망스러울 따름이지”

대추리 사람들이 고향을 떠난 지 올해로 10년째다. 2007년 3월 정부와 이주협상을 매듭짓고 3년간 임시 거처에 살다 2010년 지금의 이주단지에 정착했다. 

사실 대추리 주민들이 이렇게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은 두 번째다. 6.25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52년 가을, 미군이 평택에 군사기지를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해군 302부대가 주둔했던 자리에 미군이 눌러 앉았다. 거기에 미군은 활주로 확장을 추진하면서 대추리 주민들을 쫒아낸다. 이주비용조차 받지 못하고 주민들은 쫒겨 났다.

그로부터 58년 뒤 대추리 주민들은 다시 미군에 의해 삶의 터전을 잃는다. 2001년 7월 국방부는 “주한 미군기지를 통폐합해 운영할 것을 제안한 미군의 제안에 따라 기지 이전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발표했다. 같은 해 11월 시민사회는 미군기지 확장반대 대책위를 구성해 반대운동을 전개한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대추리 논 한 평씩 구입하는 ‘평화의 논 조성사업’을 벌이는가 하면 군경들과의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지 않는 등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평택 주민들은 단순히 땅을 지키는 투쟁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주한미군 재배치의 실상을 알게 됐고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은 더더욱 투쟁을 멈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국가권력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평택 미군기지는 미국이 보유한 해외기지 중 가장 큰 기지가 됐다.

대추리 주민들이 평택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한 대가는 컸다. 주민들은 반미세력에 호도된 불온세력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보수언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비난했다. 국가는 경찰과 군인들을 동원해 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하지만 대추리 주민들은 리사무소에 걸려있던 태극기를 마을을 떠나는 날까지 떼지 않았다. 

200가구 넘게 살았던 대추리는 지금의 보금자리로 옮긴 후 40여 가구만 남았다. 세상을 떠났거나 멀리 이사 간 주민들도 많다. 남은 주민들은 평화마을에 정착해 살고 있다. 이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다시 대추리 너른 평야를 마주하고 평택 미군기지가 사라질 때까지 대추리를 기억할 것이다. 

미군기지로 쫒겨난 사람들 평택 대추리 외에도 일본 오키나와, 필리핀, 괌 등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터전에서 쫒겨났다. 사진=『기지국가』갈무리(출판사 갈마바람)

지금도 대추리의 평화운동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주민들은 평택평화센터를 세웠다. 이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투쟁에 이어 평택지역에서 일상적으로 미군문제를 다루는 평화운동단체이다. 강미 평택평화센터 센터장은 “평화센터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문제점을 알리고 기지 철수를 위한 운동을 벌이기 위해 세워졌다”고 소개했다. 이어 “미군 범죄, 미군기지 소음, 환경피해 등 지역에서 발생하는 미군관련 피해사례들을 접수, 상담하고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가권력이 무너트린 마을공동체는 다시 뭉치고 있다. 이들은 협동조합 ‘대추리사람들’을 만들어 식물체험농장, 목공체험, 전통음식 만들기, 숙박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대추리 주민들은 여전히 고향에서 황금빛 노을을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꿈꾼다. “반드시 미군이 떠날 날이 올 거라고 난 믿어유. 그래서 내 땅을 다시 찾게 되는 날, 가장 마지막에 떠난 내가 가장 먼저 들어 올거유. 내 눈감는 날까지 그런 좋은 일이 안 오믄 죽어서 영혼이라도 돌아 올거유” - 유진아, 「대추리 양옥집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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