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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들에게 보내는 편지철학은 인생을 선물로 만들어
여유 가질 줄 아는 사람 돼야
‘선물 같은 삶’을 만끽하라
  • 김치완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2.18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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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끼데스까(お元氣ですか)

지난 6일 오후 7시를 기준으로 제주시에는 41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닷새째 발효됐던 대설경보는 7일에 해제되었지만, 아라동 캠퍼스에 2주째 쌓인 눈은 그대로다. 첫사랑을 닮은 누군가가 “오겡끼데스까?”라고 안부를 물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말이다.

그래서일까. 내내 누군가에게 안부를 묻고 전하는 “러브레터”를 쓰고 싶었다.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며 쓴 편지, 그리고 그에게서 온 답장. 이들을 연결하는 이 편지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요?” 개봉한 지 25년도 더 지난 영화를 읽어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이어진다.

“두 사람이 보낸 편지의 중심엔 죽은 이츠키(藤井樹)가 있습니다. 편지를 보낸 이츠키는 그와의 추억이 몇 가지 있지만, 그의 속마음을 전혀 모르죠. 그에 비해 히로코(渡邊博子)는 죽은 이츠키를 잘 알지만, 그의 과거에 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히로코가 연인의 과거를 묻는 과정은, 오히려 여자 이츠키가 남자 이츠키를 기억하게 하고, 그 과거의 행동을 히로코가 해석하게끔 유도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금의 나를 과거로 데려가서 그때의 나와 만나 서로 안부를 묻게 하는 선물이다.

#거품은 언젠가 빠진다.

같은 시각 밤새 폭락한 뉴욕 증시의 영향으로 가상통화 시장이 요동쳤다. 최근 급락세를 보이고 있는 가상화폐들이 결국 0달러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주장을 소개하는 기사가 게시되었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비트코인과 리플, 이더리움 등 가상화폐 가격이 반등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게시되었다. 가상화폐들이 제도권 아래 들어오면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풀이한다는 또 다른 전문가의 의견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벌어졌을 때도 그랬다.

“‘대형 은행들은 주택저당증권(MBS)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렸죠. 하지만 채권으로 판매할 대출 담보가 금방 동나버려요.’ 여러분들은 약 10초 정도만 이 설명을 들어보셨지만 이미 대충 감을 잡으셨을 겁니다. 지금 네이버에서 용어의 뜻 하나 하나를 검색해보지 않는 이상 이 설명을 전부 이해하기는 힘들 거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거품 목욕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이 장황한 설명을 딱 한 마디로만 이해해보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거품은 언젠가 빠진다.” 

망각이란 거품이 빠진 뒤에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하는 선물이다.

#이젠 뭘 하지?(what should I do next?)

세기의 재판으로 이목이 집중되었던 대기업 오너의 항소심 결과를 두고 찬반 공방이 거세다.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법조계 내부에서도 이견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현직 부장판사가 판결을 두고 비판 의견을 정면으로 밝히는가 하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항소심 재판장의 파면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빗발치고 있다. 집행유예를 선고한 해당 판사가 이례적으로 보수언론과 인터뷰한 것도 한 몫을 했다. 문득 영화 속 천재 수학자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문제가 궁금해진다.

“그 문제는 바로 ‘이젠 뭘 하지?’였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우리는 잘 사는 걸까? 이 문제는 사실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수학자로서 삶을 살아온 다이앤은 ‘답이 없는 이 문제를 견디지 못했다’라고도 볼 수 있죠. 그런데 또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은 다이앤의 오빠 프랭크가 철학전공 조교수였다는 사실입니다. 철학이란 답이 나와도 계속해서 그 답을 의심하는 학문입니다. 결국 답이 없는 그 자체를 음미하는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죠.” 

빵 한 조각 구워낼 힘도 없지만, 철학은 인생을 선물로 만들어준다.

어쩌면 앞으로 다시 졸업할 일이 없다는 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졸업생이 될 때마다 듣게 되는 응원의 말을 그만 들어도 될 테니.

가끔은 과거의 나를 불러내어 오늘의 나와 서로 안부를 물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삶을 살아라. 한 번씩은 욕망의 거품이 너무 커지기 전에 멈출 수 있는 힘을 가진 삶을 살아라.

그리고 문득 왜 사는지 되묻게 될 때에는 ‘그래서 인생이란 살아볼만 한 것’이라는 개똥철학을 멋지게 펼쳐볼 수 있는 삶이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런 ‘선물 같은 삶’을 살기 바란다. #Me too.

김치완 철학과 교수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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