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나는 버려진 아이에 관한 JTBC 뉴스를 접했다. 버려진 아이를 보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바로 그 아이를 버린 엄마였다. 자신의 행동을 뉘우친 엄마는 뒤늦게 아이를 직접 키우겠다고 말했다. 아이의 엄마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정신을 차리고 아이 엄마가 이 아이를 잘 키웠으면 좋겠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 뉴스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무엇일까. 아이를 버린 엄마의 윤리의식? 혹한기에 떨었을 아이의 심정? 나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보기로 했다.

사실 난 JTBC의 해당 기사가 끝나기도 전에 엄마의 ‘자작극’이라고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자작극’이라는 취재기자의 말에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도대체 난 왜 신고한 사람이 ‘엄마’라고 확신했을까. 아무래도 ‘어금니 아빠’, ‘고준희’ 양의 부모에 대한 충격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상식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뉴스가 되는 것은 일상적이다. 우리는 이런 비상식적인 사건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을 무감각하게 예상하게 되었다. 의심은 무미건조하면서도 점점 각박해졌다. 유기된 아이를 신고한 사람을 의심해야 하는 시대, 의심의 범주를 넓혀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지난 정부의 민간인 사찰, 세월호, 블랙리스트에 관한 의혹 역시 그렇다. 혹시나 했던 우려가 하나하나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런 충격적인 사실에 놀라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물론 신생아를 유기한 사건과 지난 정부의 직권남용은 결이 다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둘이 같다, 다르다가 아니다. 우리는 충격적인 것들을 더 이상 충격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데에 대해, 사람들 간의 믿음과 신뢰가 깨지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충격에도 끄덕하지 않는 세상, 의심의 범위를 넓혀야만 하는 세상에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드라마 같은 일들이 현실이 된다. 이제는 현실이 드라마인지, 드라마가 현실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가상이 곧 현실을 위협한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속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의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의심하는 마음을 접어두고 믿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신’하는 것이 곧 ‘합리적’인 세상은 참으로 야속하다. 그런 스스로가 야속해지는 오늘 하루, 아무렇지도 않게 충격적인 일들을 짐작하고 있는 스스로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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