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현 정치외교학과2

얼마 전 친구에게 카톡으로 시를 하나 받았다. 장석남 시인이 쓴 ‘번짐’이라는 시 한편. 그냥 우연히 이 시를 읽다가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는 구절이 너무 좋아 계속 읽고 또 읽었다. 알게 모르게 이 시는 어느새 내 마음에 번져 있었다.

깜깜했던 새벽하늘이 점점 밝아지는 풍경을 좋아한다. 깜깜한 하늘에 아침 해가 번지며 밝아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좋다. 밝았던 하늘도 점점 어둠이 스며들면 밤이 된다. 사계도 마찬가지로 시린 겨울이 번지면 다시 따듯한 봄이 된다. 시간도 점점 번져 어리고 철없던 아이가 서서히 성숙한 어른이 된다. 우리는 번져가는 과정 중에 살고 있다.

번짐이란 무엇일까. 나는 번짐이라고 하면 하얀 도화지 위에 먹물을 똑 떨어뜨려 퍼져나가는 장면이 생각난다. 번짐에 관점에서 보면 자연현상, 인간, 풍경, 삶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다. 알고 보면 ‘번짐’은 우리의 삶의 바탕이 된다.

나는 이 번짐의 관점으로 인간관계를 바라보고자 한다. 위에서도 말한 도화지와 먹물처럼, 번짐은 어떤 개체가 자신의 색깔을 퍼트려 전이시켜 나가는 것이 번짐의 속성이다. 이것은 한 개체가 다른 개체가 되는 과정의 시작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먹물이지만, 또한 쉽게 물들 수 있는 도화지기도 하다.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어떤 조직에 들어가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하느냐에 따라 흰 도화지는 점점 여러 가지 색깔로 물들어간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번지게 하고 번지게 되어 서로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는 말이다. 자연스럽게 번져 물들어버리면 그 흔적을 지우려 해도 지우기 쉽지 않다. 노란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초록색이 되듯, 우리는 점점 사회를 경험하면서 여러 색깔을 접하게 될 것이고 다른 누군가를 만나 물들고, 물들여지는 것의 연속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번진다는 것. 어떻게 보면 긍정적이기도 부정적이기도, 슬픈 일이기도 멋진 일이기도 하다.

사실 내 꿈은 누군가에게 멋지게 번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번져 예쁜 색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의 색을 나눠주고 싶다. 나의 소망이라 하면, 지금 이 글도 누군가에게 따듯한 번짐이 될 수 있길, 따듯한 색이 번지고 번져 온 세상을 따듯하게 물들일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