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강의가 있는 날 문을 나서면 익숙해진 습관대로 길의 방향을 정하게 된다.  반복되는 일이어서 쉽게 길을 잃거나 헤매지 않는다. 늘 있는 학교 가는 길 이야기지만, 우리의 인생 전체에 놓인 여정에 대한 단상으로 바꾸어도 될 듯하다.

우리 인생의 여정에는 갈림길이 수도 없이 나타난다. 그때마다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 일단 잘못된 길로 들어서면 여간해서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 리 길을 가려는 자는 반드시 먼저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도 막상 문을 나서 길을 가다 보면 갈팡질팡하게 되므로 반드시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묻기 마련이다. 길을 아는 사람이 바른길을 알려주고 또 가서는 안 되는 길을 자세하고 정성스럽게 일러준다.

그러나 의심이 많은 자는 좀체 믿지를 못해 머뭇거리며 다시 딴 사람에게 묻고 또다시 딴 사람에게 묻는다. 그러면서 남들이 모두 옳게 여긴다 해서 따르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결국 함정에 빠져 구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설령 마지막에 가서 자신이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을 깨닫고 되돌아온다손 치더라도 이때는 이미 시간을 허비하고 소모해 버린 터라 돌이킬 여유가 없게 된다. 남들이 분명하게 일러준 말에 따라 힘써 행하여 쉽게 일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뜻이란 학문을 의미한다. 또 ‘선(善)을 따르기는 산을 오르는 것처럼 힘들고, 욕심을 따르기는 물이 낮은 데로 흐르는 것처럼 쉬운 법’이라는 옛말도 있듯이, 뜻이 굳세지 않으면 물욕(物慾)에 흔들려 뜻을 빼앗기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였다.

다음으로는 좋은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에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찾는다(同聲相應 同氣相求)’는 <주역>의 글귀를 인용하여, “학문과 선(善)을 좋아하고, 올바르며 점잖으며, 정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을 벗으로 삼아야지 “게으르고, 놀기만 좋아하고, 말만 그럴싸하게 하면서 정직하지 못한 자”와 사귀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는 학문에 힘쓰는 것이다. 젊어서 학문에 힘쓰지 않으면 늙어서 그 때를 놓치는 것이, 농부가 봄철에 씨를 뿌리지 않아 가을철에 수확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학문을 차근차근히 하는 것은 반드시 순서에 따라서 해 나가야만 한다. 만약 등급을 뛰어넘어서 속히 이루고자 한다면, 도리어 도달하지 못하게 된다. 이것은 농부가 싹이 빨리 자라라고 싹을 뽑아 올리는 것과 같다. 그런데 농사를 잘못 지었을 경우에는 그 피해가 농부 한 사람만의 삶을 힘겹게 하는 데에 그친다. 그러나 학문하는 사람이 잘못된 생각으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학문하였을 경우에는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삶마저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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