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석 영어영문학과 교수

한반도의 긴장에 있어서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 1968년 보다 더 긴박했던 때가 있었을까 싶다.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124군 특수부대의 청와대 침투사건을 필두로 해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미 해군 정보함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등등 1968년을 회고해 볼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으로까지 치닫지 않은 것이 놀라울 뿐이다. 아니 어쩌면 보이지 않는 평화의 손이 개입된 기적이 아니었을까 여겨질 정도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2018년 오늘의 이 시점에서의 한반도는 어떠한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사적 긴장지수를 자랑(?)하는 한반도에서 지난해부터 북미 간에 말로는 이미 핵전쟁을 다 치렀고, 실제로도 서로가 서로를 향해 핵단추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밀려오는 전쟁의 먹구름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꼴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겪은 지난 역사를 조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결단코 남과 북만의 전쟁으로 국한될 수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해 본다. 다시 말하자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반드시 국제전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냥 전쟁터만 제공해주고 인적.물적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가 다 감당해야 만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반도의 성격상 승패를 가리기가 어렵고 종국에 가서는 전쟁 전의 원점의 상태로 종결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다. 임진왜란 때는 일본군에 맞서 명나라 군대가 개입함으로써 겨우 무승부로 끝냈고 한국전쟁 때에는 중국군과 미군이 개입해서 겨우 현상유지의 선에서 포성을 멈춰놓았을 뿐 아니겠는가.
이 역사적 교훈은 이 땅 한반도에서의 전쟁은 “No” 라고 할 수밖에 없음을 강력하게 시사해 주고 있다. 1968년 무척이나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우리가 전쟁 대신 평화를 선택했던 것처럼 오늘날 북미간 핵 대결에서도 종국에는 평화를 선택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워싱턴 DC에서 남쪽으로 95번 고속도로를 타고 약 한 시간 쯤 달려가면 버지니아의 콴티코 미 해병대 박물관이 있다. 그 곳 모퉁이 한 곁에 아담한 규모로 기념비가 하나 세워져 있는데 그게 바로 ‘고토리의 별’이다. 고토리는 개마고원의 장진호에 있는 마을 이름이고, 고토리의  별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1월 26일부터 개시된 미군의 후퇴작전을 상징하고 있다. 미 제1해병사단 1만5000명이 중국군 7개 사단 12만명에 포위되었다가 당시 고토리에 별이 뜨면서 개시된 작전에서 4500명의 전사자를 남기고 극적으로 흥남으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미 해병 전쟁사에서 잊을 수 없는 주요한 전투이다.

나는 이 고토리의 빛나는 별을 평화의 별로 보고 싶다. 이 별로 인해서 미군은 흥남으로 철수하게 되었고, 그 결과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던 중국군도 철수해 가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 날 유달리 밝게 뜬 고토리의 별은 이 땅 한반도의 싸움터에 들어온 외국 군대들을 잠시나마라도 철수케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한반도에서 작금 벌어지고 있는 핵 대결을 향해 다시금 고토리의 빛나는 별이 평화의 별빛이 되어 우리에게 비춰주기를 소망해본다. 미국도 B-1B 랜서를 동원한 한반도에서의 핵전쟁 연습을 중단하고 북한도 워싱턴을 향해 겨누고 있는 핵탑재 ICBM을 거둬들이기를 촉구한다. 고토리의 별은 말한다. 전쟁은 가고 평화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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