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도 현 언론홍보학과 교수

공평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른 것을 말한다. 조세 공평주의라고 한다면, 조세부담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르게 배분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국민이 똑같은 금액을 내도록 하면 공평할까? 예를 들어, 누구나 세금을 매달 50만원씩 내도록 한다면 공평할까? 공평하지 않다. 세금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월 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에게 50만원은 큰 부담이 아니다. 소득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월 2백만원 받는 사람에게는 큰 부담이다. 소득의 25%나 된다.

그렇다면 같은 비율로 과세하면 공평할까? 예를 들어, 누구나 소득의 10%를 내도록 하면 어떨까? 월 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에게는 10%인 500만원을 내도록 하고, 월 2백만원 받는 사람에게도 10%인 20만원씩 내게 한다. 이 역시 불공평하다. 월 5천만원 소득자는 세금 500만원을 내도 월 4천500만원이 남지만, 월 200만원을 버는 사람이 세금 20만원 내고 나면 월 180만원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소득세는 소득수준이 올라갈수록 세율이 높아진다. 연 소득이 5천만원이면 세율이 24%이고, 5억원을 초과하면 세율이 42%다.

물론 모든 세금에 이런 원리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부가가치세율은 정률이다. 소득수준이나 거래 금액에 관계없이 누구나 10%를 낸다. 부가가치세가 가장 비효율적이고 불공평한 과세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이제 등록금 이야기를 하자. 누구나 같은 금액의 등록금을 낸다. 장학금을 통해 감면 받는 경우가 있지만, 부과되는 금액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공평한가? 불공평하다.

연 소득이 5억원인 사람과 연 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이 같은 금액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연 500만원인 경우, 연 소득이 5억원이면 소득의 1%에 불과하다. 등록금을 내고도 4억9천500만원이나 남는다. 반면 연 소득이 5천만원인 가계인 경우 등록금 내고 나면 4천500만원밖에 남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은 더욱 불공평하다. 연 소득이 5억원인 사람과 연 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에게 모두 같은 금액을 내도록 하면서, 심지어 같은 금액을 절반으로 깎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록금도 소득 수준에 비례해 책정해야 한다. 소득 수준의 증가에 따라 등록금을 차등 부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가계 소득이 일정 수준 이하인 경우에는 등록금을 면제한다. 가계소득이 5천만월이면 소득의 2%를 부과하고, 가계 소득이 1억원이면 소득의 5%를 부과한다. 가계소득이 5억원이상면 소득의 10%를 부과하고, 10억원이 이상이면 소득의 20%를 부과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공평한 등록금 제도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은 먹고 살아야 한다. 집도 있어야 하고, 옷도 입어야 한다. 즉, 생활비가 필요하다. 가난한 집 자식은 본인 생활비뿐 아니라 가족 생활비까지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람에게 등록금 면제는 무의미하다. 가난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를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이해할 수는 있어도 그게 무슨 느낌인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저소득층 가계에는 등록금 면제뿐 아니라 생활비 지급이 필요하다. 만일 가계소득이 전혀 없다면 최소한 최저임금 수준의 생활비 지원이 있어야 한다.

반값 등록금 제도는 불공평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도 현저히 떨어지는 정책이다.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원마련을 어렵게 하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오는 수입은 고정돼 있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 국비지원, 교수들의 연구나 용역의 간접비 수입, 그리고 기부금 등이다. 국립대는 등록금 비중이 절반 정도이고, 나머지는 국비지원, 연구간접비 등으로 충당한다. 사립대는 등록금 비중이 80% 정도 된다. 미국의 연구중심 대학은 기부금 비중이 꽤 크지만, 한국은 미미하다.

대학에서 써야 하는 돈은 정해져 있다. 그리고 물가도 계속 오른다. 따라서 등록금을 동결하면 다른 데서 그만큼 보충해줘야 한다. 국비지원을 늘릴 수 있겠다. 그러나 국가 조세 수입은 크게 변하지 않는데, 대학에만 국가재정 투입을 늘리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오랜 기간 등록금을 동결하면서도 대학에 국비지원을 늘릴 수 없었다.

기업기부금도 있겠다. 극소수 상위권 대학은 가능하지만, 대다수 대학에게 현실성 있는 대안은 아니다. 기여 입학제도 있다. 학력의 대물림 등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도입하기 어렵다. 시민기부금을 늘리려고 하지만, 한국문화에서는 이것도 제한적이다. 교수들이 연구과제를 많이 수주해 간접비를 크게 늘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연구과제의 총량은 늘 비슷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는 곳은 뻔하다. 인건비, 도서구입비, 데이터베이스 구독료 등이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소규모 강의를 금지한다. 국립대는 교육부 지침으로 전공 15인, 교양 30인 이하 과목은 원칙적으로 개설 금지다. 소규모 강의는 일단 폐강되고, 교수가 특별히 개설허가 신청을 따로 해야 재개설 된다.

다음으로 줄일 수 있는 게 도서구입비, 소프트웨어 라이선스 및 데이터베이스 사용료다. 결국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제주대학교에서 라이선스해 쓰는 소프트웨어를 보면 반값 등록금 제도의 폐해를 잘 알 수 있다. Z!Stream은 소프트웨어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데, 2018년 현재 Z!Stream에서 서비스하는 MS오피스는 Office2007이다. 포토샵은 2007년에 나온 CS3다. 동영상 편집에 널리 쓰이는 프레미어는 아예 제공하지도 않는다. 구독하는 데이터베이스도 제약이 많다. 학교에서 구독하는 데이터베이스에 본문을 볼 수 없는 논문이 적지 않다.

소규모 강의도 늘리고,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베이스를 더 많이 구독하는 게 필요한 줄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다. 돈이 없으니까.

반값 등록금 정책은 폐기해야 한다. 대안은 소득비례 등록금과 학습수당 지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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