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태 연사회학과 석사과정

연애, 결혼, 출산뿐만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N포세대’를 비롯해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온갖 딱지가 붙었다. 금수저와 흙수저가 대조를 이루는 ‘수저계급론’은 청년들 사이에서 ‘세상에서 연줄보다 더 좋은 줄이 탯줄’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을 파생시켰다. 이렇다 보니 제아무리 ‘노오력’(노력보다 더 큰 노력을 하라는 뜻을 담은 풍자)을 해도 결국 ‘비ㆍ계ㆍ인’(비정규직ㆍ계약직ㆍ인턴)이나 ‘티슈 인턴’(한번 쓰고 버려진다는 뜻) 신세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서 노(no)답인 현실을 견뎌내기 위해 ‘시발비용(홧김에 쓰는 돈)’을 쓰면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껴안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하지만 이런 수사만 가지고 제주지역의 청년들의 삶을 설명하려면 잘 들어맞지 않는다. 지방이어서, 섬이어서 기인하는 특성을 보태야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여느 지역과 비교해 여러 면에서 표준편차가 적은 곳이다. 경제적인 면에서 특히 그렇다. 직업군이 다양하지 않은 제주도에서는 대대로 떵떵거릴 부자도, 찢어지게 가난한 이도 눈에 단번에 띄지 않는다. 수저계급론으로 들여다보자면 은수저와 동수저쯤으로,  그 격차는 확 벌어지지 않는다. 내게는 사치인 소비가 누군가에겐 기본적인 것임을 확인하면서 ‘현타’(현실자각타임)를 느끼는 경우가 그리 빈번하던가? 가계가 빠듯하더라도 조금 불편할 뿐, ‘살암시민’ 어떻게든 살아지기 마련이다. 

이런 배경은 서로 비슷해야한다는 강박과도 얽혀있다. 흔히 ‘궨당 사회’라고 하듯 제주의 지역사회는 관계가 중심이다. 서로 조금만 안면이 있어도 ‘사돈에 팔촌으로 걸린 궨당’이라 표현할 정도로 좁고 견고하다. 개방적이기 보다 폐쇄적인 집단에서는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이 강조된다. 남과 다른 것은 개성이 아니라 모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벨라지고 요망진(똑똑하고 야무진) 청년들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던 4ㆍ3 이후 암묵적으로 더욱 굳어져 갔다. 한창 가치관을 만들어가는 시기에 주입식 교육 방침과 ‘속솜’(아무 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물다)해야 하는 분위기가 맞물리다 보니 자신을 알아가고 드러낼 기회를 겪어본 적이 많지 않았다.

학연, 지연, 혈연 등으로 일찌감치 엮여버린 관계는 종신적이다. 촘촘하고 갑갑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탈출뿐이다. 그래서 공부 깨나 하던 청소년들의 꿈은 ‘탈제주’이다. 육지부 청년들이 대안을 찾아 제주행을 택하는 것과 교차되는 현상이다. 좋은 성적을 거둬 ‘인 서울’(in Seoul)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성적 때문에 혹은 부모의 반대해서 섬을 벗어나는 일에 좌절하면 자신을 패배자로 여기는 현상은 줄곧 잇따랐다. 이런 경우에 장장 12년 입시 끝에 얻은 스무 살의 자유는 방황으로 점철된다. 진학한 학교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채 재수나 반수를 한다는 학생들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 시도해봤자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만성 무기력에 빠지고 만다.

여가의 빈곤은 가뜩이나 기력 없는 일상에 활력까지 빼앗는다. 학교가 끝나고, 회사 일을 마친 후에 제주의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 문화생활이라고 해도 영화관이 고작이다. 갈 곳 없이 제주시청 인근 대학로를 헤매며 하루를 보낸다. 소문난 커피숍을 찾아다니거나 술을 마시거나 PC방에 가거나, 그 가짓수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다. (통계가 현상을 낱낱이 담아내진 못하더라도) 지난해 4월부터 제주도내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제주 청년 종합 실태조사’ 결과에는 현재 삶에 대한 행복을 묻는 질문에 ‘보통’이라는 응답이 45.3%로 가장 많았다. 만족하지도, 불만족하지도 않은 상태가 나타내는 것은 원하는 것도, 성취할 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는 뜻이 아닐까. 대한민국의 청년들 다수가 오늘을 견딘다고 도무지 나아질 것이 없는 내일을 버거워하고, 제주의 청년들은 별일 없던 오늘이 지나 새로울 것이 드문 내일이 기대되지 않는다.

청년 세대의 제주 유입 인구가 늘어나면서 1인 가구의 비율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들은 여전히 캥거루족이 다수이다. 집에서 학교나 직장이 그리 멀지도 않은데 구태여 나가 살 이유가 없다.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와 함께 산다는 것은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부담은 줄어드는 대신 자유는 온전하지 못하다. 설령 독립과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결정적인 순간에 부모의 입김을 모른 척 하기는 어렵다. 다양한 경험과 만남보다는 공무원 시험과 취직으로, 결혼으로, 출산으로. 부모 세대에서 정상으로 여겨졌던 진로대로 가기를 말이다.

내내 ‘튀지 않을 것’을 암묵적으로 강요받으며 개성을 드러낼 기회가 부족했던 학창시절을 지나 청년이 되어도 극적인 변화는 찾아오지 않는다. 설령 자아를 발견하고 적성을 찾는다고 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직업군은 그리 많지 않다. 불균형한 산업 구조, 영세한 기업 규모, 인건비에 인색한 사회 인식 등이 밑바닥에 깔려있는데 갖은 스펙을 끌어다 모은 이력서를 낼 곳조차 손에 꼽는다. 기로에 놓인 청년들 가운데 다수가 부모의 등살에 혹은 별다른 수를 찾지 못해 ‘공무원 시험’에 발을 딛는다. 도서관으로, 독서실로, 노량진으로. 수백 명을 제쳐야 합격할 수 있는 승률은 청춘을 건 도박이다. 젊음은 더 이상 밑천이 아니라 판돈이다. 인내는 쓰고 열매도 쓰다. 고배의 주인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암담한 현실이 고착화되자 청년들이 처한 현실을 그저 배부른 소리라거나 철모른 투정으로 여기던 기성세대들의 시선도 달라지고 있다. 외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청년수당’, ‘청년배당’같은 정책적 논의가 공론화되더니 전국적으로 청년정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갔다. 지방자치단체마다 전담 부서를 두고 청년 지원 체계를 만드는 작업이 한창이다. 제주도에서도 2016년 하반기에 청년정책계를 신설했고, 지난해엔 제주청년센터의 문을 열었다. 이제 막 걸음마단계이나 책무는 분명하다. 한국 청년들의 삶을 가로지르는 보편성과, 제주 청년들의 삶을 쥐고 흔드는 특수성을 헤아린 정책을 고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 도움말 = 제주청년네트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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