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전환이란 무엇인가

이 정 필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수용한 ‘에너지 전환’은 분명 과거 에너지 정책의 기조와 차별화된다. 집권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정부의 정책 변화를 온전히 평가하기에 무리가 따르지만, 재생에너지를 늘려 핵에너지와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대체하겠다는 행정적 의지는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보다 전체적인 조망 없이 ‘에너지원’으로 좁혀서 전환의 원칙과 방향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이 필요하다. 이런 배경에서 개별 정책들을 하나하나 검토하기보다 시스템 전환(system transition)이라는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살펴보자.

국내에서 에너지 전환 접근은 1990년대 말에 등장했으며, 2000년대 초반을 경과하면서, 특히 이명박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과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 사고를 계기로 시민사회 및 전문가 그룹에서 관련 담론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에너지 전환은 시민사회의 선도적 투쟁과 실험으로 촉발됐고 몇몇 지방지치단체가 이 흐름에 동참했으며, 이런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반응한 현 정부에 의해 탄력을 받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에너지 전환은 한마디로 말해서 시민과 지역과 생태가 중심이 되는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 또는 이행을 의미한다. 시스템이라는 개념을 쓰는 이유는 에너지의 생산, 분배와 소비는 복잡한 기술적 설비들이 상호 연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너지 시스템은 단순히 기술공학적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공간적, 생태적, 문화적 측면 등 다양한 요소들과 서로 맞물려 존재하며 기능하는 시스템이다.

1970년대, 에머리 로빈스는 경성에너지경로(hard energy path)와 연성에너지경로(soft energy path)를 대비하면서 에너지 경로 전환을 주장했다. 이후 정교한 논의를 거쳐 일반화된 이론으로 에너지 전환 연구가 자리 잡았다. 경성에너지시스템(hard energy system)은 화석ㆍ핵에너지를 주된 에너지원으로 삼아 국가와 자본이 관장하는 거대기술로 공급중심의 에너지시스템으로 설명된다. 반면 연성에너지시스템(soft energy system)은 수요관리와 함께 재생에너지로의 에너지원 변화를 통해 생태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전환을 동시에 추구하는 미래 에너지시스템을 구상한다.

이렇듯 에너지 전환은 경성에너지시스템에서 연성에너지시스템을 지향하는 사회 재구성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에너지 전환은 ①에너지원, ②에너지 이용의 의미, ③에너지 이용자의 행동ㆍ규범, ④에너지 생산ㆍ소비의 공간적 배치, ⑤생태환경과 건조환경, ⑥에너지 생산ㆍ공급의 소유ㆍ운영ㆍ관리 주체, ⑦에너지-사회시스템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전환 과정으로 이해된다. ‘탈핵’이나 ‘탈석탄’이 에너지 전환의 전부가 아닌 이유가 이 때문이다.

에너지 전환은 이념형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 두 에너지 시스템을 가로지르는 장벽에 주목하지 않고서는 관념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전환’은 ‘전환 전략’으로 바뀌게 되며, 경로와 거버넌스 문제로 이어진다. 실제 에너지 전환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전환 거버넌스의 구성과 역할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한다. 정부, 시장,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행동공간의 거버넌스 배열의 차이에 따라 에너지 전환의 경로가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수직적, 수평적 수준에서의 거버넌스가 핵심적인 이슈로 부상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시장-시민사회라는 여러 관계들 속에 내재하는 쟁점들을 종합적으로 다뤄야 한다. 즉, ‘에너지 권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에너지를 둘러싼 투쟁은 지구적 권력관계 위쪽으로 올라가야 하고, 국가를 경유하여 일상의 리듬 아래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에너지는 고립된 어느 하나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에너지 생산, 유통과 소비의 패턴이 다양한 스케일과 영역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그리고 이와 함께 권력관계가 에너지에 의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이 과정과 현장에서 화석연료와 핵에너지 개발에 저항하고(Resist), 에너지를 공적영역에서 되찾고(Reclaim), 그 영역을 민주적으로 통제되고 가용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구조로 재구성하는(Restructure)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 3R이 에너지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그렇다고 재생에너지가 무조건 선이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최근 부쩍 늘고 있는 태양광, 풍력, 바이오 등 재생에너지를 둘러싼 환경성이나 수용성 갈등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재생에너지를 어떻게 확대해야 할까. 우리는 재생에너지를 에너지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는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3차 산업혁명’처럼, 분산형 수평적 특성을 갖는 재생에너지시스템이 에너지의 민주화와 분권화를 촉발한다는 기술 결정론적 가정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4차 산업혁명’이나 ‘에너지 4.0’으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해서 재생에너지 민주주의가 반드시 더 민주적일 것이라고 가정할 근거는 없다.  

에너지 전환의 핵심은 다름 아닌 ‘에너지 민주화’다.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전환을 수용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떤 국면이 펼쳐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에너지 전환 경로가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전환의 과정과 그 결과는 상이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헤게모니가 상실될 경우 전환의 동력 또한 상실될 것이라는 점이다. 에너지 전환이 무엇인지 알고 싶으면, 에너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자. 다시 민주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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