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양 범 지리교육전공 4

어나는 벚꽃이 제주의 봄을 알릴 때, 학생회관 뒤편이 한동안 굴삭기 소리로 시끄러웠다. 신관과 외국어교육원 사이에 비어있는 부지를 매립하는 현장이었다. 나는 이곳을 매립해 무엇을 할지 내심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나무를 심고 연못을 파서 야외 공원을 조성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웬걸, 얼마 뒤 그 일대는 아스팔트 굳는 냄새로 가득 찼다. 반듯하게 줄을 댄 듯 빽빽하게 그어진 선은 스무 대 가량의 자동차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돼있었다!

현대의 자본주의적 공간에서 ‘도로’와 ‘주차장’은 효율화의 극치다. 도로는 원하는 목적지에 최단시간-최단거리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 주차장 역시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의 자동차를 수용한다. 요컨대 자본주의적 공간조성에 있어 도로와 주차장은 ‘관리자 입장에서’ 가장 탁월하고 손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효율성은 비판이 싹틀 틈을 제공하지 않는다. 아주 견고하게 굳어버린 아스팔트는 마치 ‘장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주차장이 조성된 이후 비판의 목소리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제주대의 수요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이번에 조성된 주차 공간은 항상 자동차로 들어차있다. 하지만, 나는 이 공간에 반대한다. 없었던 공간까지 매립하여 만들어 낼 정도로 제주대의 주차난이 심각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게다가 이는 단순히 ‘차 세워서 업무보기 좋고, 편리하면 그만’인 문제를 넘어선다. 현재 주차 공간이 입지한 곳은 대학 안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위치는 잠재적으로 사고 위험을 높이고, 교통약자의 안전과 이동권을 보장할 수 없다.

대학 안의 모든 장소는 공익을 위해 존재해야한다. 학교는 구성원 모두가 만족할만한 캠퍼스를 조성할 의무가 있다. 나는 매연을 마시며 등교하고 싶지 않다. 이 장소에서 다양한 차종(車種)이 아닌 수종(樹種)을 보고 싶다. 학우들과 자연을 즐기면서 대화할 수 있는 장소를 원한다. 캠퍼스의 중심에서 효율이 아닌 여유를 외치고 싶다. 그러나 만약 나의 이러한 바람이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결국에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본관 앞의 잔디벌판(잔디보호 때문에 일 년에 반은 들어갈 수 없는 금단의 공간)에 주차 빌딩을 지을 것을 제안한다. 캠퍼스 한 가운데에 높고 거대한 효율성의 바벨탑을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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