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집지(執贄)라고 하여 스승과 제자가 인연을 맺는 예절이 있었다. 제자가 처음 스승을 만나 뵐 적에 폐백(幣帛)으로 예를 갖추어 경의를 표하고 문인(門人)이 되는 하나의 의식이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을 시작으로, 스승은 제자에게 임금과 부모에 버금가는 존재로 인식되었고, 평생 가르침을 주고받는 소중한 사제관계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제자들은 예를 다하여 가르침을 배워 실천하려 정진하였고, 스승은 제자들에게 모범이 되기 위해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선생(先生)을 단순하게 문자 그대로 풀어본다면 ‘삶을 먼저 산 사람’이다. 요즘에는 선생이란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지만, 그 본래의 의미를 살펴보면 “도를 깨달은 자, 덕업이 있는 자, 성현의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쳐주며 의혹을 풀어주는 자, 국왕이 자문할 수 있을 만큼 학식을 가진 자” 등을 칭하는 용어로, 단순히 세상을 먼저 살았던 존재라는 의미를 넘어 학식과 덕업을 지닌 스승을 일컫는 말이었다.

한 사람이 평생 동안 가르침을 받으며 만나는 선생님들을 헤아려보면 공식적으로만 초등 6년, 중등 6년, 대학 4년, 얼핏 보아도 열 손가락을 넘어선다. 비공식적인 가르침을 받은 선생님들까지 포함한다면 그분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 많은 선생님들 가운데 우리에게 참된 스승으로 기억되는 선생님은 몇 분이나 될까. 인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깨우침을 주고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준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있어서 우리는 성장할 수 있었다. 수면자 효과(sleeper effect)란 말처럼 어떤 계기에서 그 말이 생각날 수도 어쩌면 평생 기억이 안 날수도 있지만 선생님들은 가르침을 포기하지 않았다. 선생님, 즉 스승이란 바로 그런 존재이다.

이제 친구와 같은 부모가 필요한 시대이자 권위주의를 벗어난 대통령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사회구조도 지식의 성격도 소통의 방법도 변하여,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변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이며 스승도 제자도 받아들여야 하는 변화의 요구이다. 동행(同行)의 사제관계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된 것이다.

스승은 제자들의 입장을 배려하면서 함부로 평가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세상사 어떤 사연이든 거기에는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것이다. 그저 보이는 대로 평가하기보다는 그것이 왜 그럴까에 대해 더 깊이 사유한다면 제자들의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존중하고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스승의 자리에 오기까지 긴 세월 동안 학문적으로 노력하고 스스로를 성찰한 고된 시간들을 보낸 분들이기 때문이다. 사제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며, 그것은 인간 그 자체에 대한 존중과 배려에서 나온다. 사제동행(師弟同行)의 길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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