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3) ‘여가’와 ‘문화’의 빈곤

전세계 7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여가문화’생활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사진제공=위키트리
김 태 연 특별기자

과연 몇 살까지 청년이라고 생각하는가? 주변에 물어보면 답이 전부 다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유럽연합(EU) 등 국제기구에서는 청년(youth)를 15세 이상 24세 이하의 연령대를 가리키는 반면 우리나라의 ‘청년고용촉진 특별법 시행령’에서는 청년의 나이를 15세에서 29세까지로 규정한다.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한 국내 11개 광역단체에서도 그 범위가 각기 다르다. 심지어 마을청년회는 환갑까지도 포괄하고 있으니 따로 정답이 없어 보인다.

제주도의 청년 기본 조례에선 만19세 이상 34세 이하를 청년으로 보고 있다. 하한과 상한이 어떻든 청년을 규정하기는 난감하다. 여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세대’로 묶어서 설명하기가 애매하다. 대학생, 취업 혹은 창업 준비생, 사회초년생과 분가ㆍ출산ㆍ육아까지 생애주기에 따른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시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방이라는 특성까지 더해지면 더욱 복잡해진다. ‘청년 정책’의 범위를 두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효율을 좇기가 어려운 배경이다.

그럼에도 나이를 떠나 공통적으로 겪는 현상들이 있다. ‘여가’와 ‘문화’의 빈곤이다. 학교가 끝나고, 회사 일을 마친 후에 제주의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지낼까? 가까운 누군가와 만나서 어디로 갈까? 영화관에 가거나 커피숍을 찾아다니거나 술을 마시거나 노래방 혹은 PC방에 가거나 그 가짓수는 한 손으로도 셀 수 있다. 예술영화전용상영관이 없는 제주지역에서 영화관에 가더라도 볼 수 있는 영화는 한정적이다. 제주로 이주한 청년들에게는 바다와 오름 등 자연을 찾는 것이 좋은 여가 문화생활일 수 있지만, 제주에서 나고 자라서 살고 있는 청년들의 입장은 그와 다르다. 공연, 페스티벌, 클럽 등의 문화생활을 꿈꾼다. 제주도를 ‘문화변방’이라거나 ‘문화불모지’라고 일컫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던 것에 반해 형편이 많이 나아졌지만 일상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준은 아니다.

빼어난 예술가들은 결핍이야말로 창작의 원천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제주의 청년들 가운데서도 ‘아무것도 없으니 자발적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긍정적인 발상가들이 있다. 소소하게나마 서투르게나마 ‘주체’로 나서는 것이다. 다양성 영화를 보여주는 곳이 없으니 삼삼오오 비영리 상영회를 하거나, 공연이 드무니 의기투합해 무대를 찾아 공연을 만들어내고, 상품성이 없더라도 독립잡지를 창간해 스스로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퍼뜨린다. 생업에 쫓기고 허덕여도 또래들을 만나는 자리를 꾸준히 기획하는 이들도 있다. 사기업이나 재단, 당국에서도 뭔가 하려는 청년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난해 제주도청에서는 공통된 취향이나 고민을 가진 청년들 셋만 모이면 반년 동안 활동비 80만원을 지원하는 정책을 내놨다. 

분명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지만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아직도 지역의 청년들이 작당을 도모하기엔 인프라가 미비하다. 주위 시선에 민감한 정서도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는 ‘상수’이다. 소위 ‘나대는 것’, ‘유별나게 구는 것’을 꺼려하는 태도는 여전히 뿌리가 깊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어색해하고 튀는 행동을 삼간다. 이런 인식이 제주여서 더 두드러지기는 하나 제주만의 문제는 아닌가보다. 지방대생의 이야기에 대한 서사분석을 다룬 최종렬 계명대 교수의 『복학왕의 사회학』에서도 잘 드러난다. 지난 2017년 7월 4일자로 시사IN에 실린 그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대목이다.

10여 년간 지켜본 제자들은 성별로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1학년 남학생은 대개 술 마시고 당구 치고 피시방에서 시간을 ‘죽인다’. 어차피 곧 군대에 가기 때문이다. 제대 후 깔깔이를 입고 후배 여학생들과 어울리며 쉬운 과목을 골라 듣다 보면 어느새 4학년. 불안해진 남학생은 스펙을 쌓기 위해 휴학계를 낸다. 많은 여학생들은 신입생 때 만난 복학생 오빠와의 연애로 대학 생활을 시작한다. 연애가 끝나고 학교생활이 시시해질 3학년쯤 되면 우르르 휴학을 한다. 돌아온 제자들에게 그간 뭐했냐고 물으면 헌혈, 서빙 알바, 해외여행, 자격증 공부 등이라고 답한다. 앞으로 뭘 할 거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다”라는 답이 돌아온다.
부연하자면 “최 교수 눈에 이들은 너무도 ‘착하다’. 가족과 친구에게 충실하고 매우 관계 중심적”이다. 그리고 “이들은 도전해도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하지만 그런 자기 자신이 겸연쩍기는 하다. 이른바 ‘성찰적 겸연쩍음’”이라고 설명한다. 대학생이나 취업준비생이라면 일을 벌이기에 앞서 기회비용을 계산해본다. ‘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며 마냥 놀기 불안해한다. 그렇다고 공부에 매진하자니 시도해봤자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만성 무기력은 자꾸만 이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취업을 해도 풍요로운 여가를 누리기는 어렵다. 자기 개발에선 한 걸음 물러나 있어도 괜찮은 처지가 되었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노동 강도가 센 회사일수록 더 그렇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이 용할 지경인데 취미를 가져볼 여력이 나질 않는 것이다. 그나마 굳게 마음먹고 악기 학원이나 운동 강습에 등록했다가 며칠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날려버린 수강료로 ‘남 좋은 일만 했다’는 자조를 몇 번 겪고 나면 시도마저 귀찮아진다.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는 더욱 좁아진다. 게다가 순전히 ‘빈곤’ 때문인 경우도 없지 않다. 낮은 임금에 비해 생활비 비중도 높은데다 학자금이나 자가용 할부금을 갚다 보면 여가나 문화생활로 눈 돌릴 여유가 없다.

이런 가운데 의외의 설문 결과를 봤다. 지난해 4월부터 제주도내 청년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제주 청년 종합 실태조사’에서 문화여가 기획자나 창작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는 응답에 352명(35.2%)이나 그렇다고 답했다. 이들은 창작ㆍ기획비용 지원과 다양한 기획ㆍ전시 기회의 장 마련, 교육프로그램 강화를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인식이 달라진다면, 여건이 보강된다면, 기회를 더 찾을 수 있다면 스스로 재미난 일을 벌이고 좀 놀아보겠다는 청년들이 이렇게나 또렷하게 존재한다.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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