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4) 청년세대의 ‘나를 찾는 시도’가 중요한 이유

문준영  제주의 소리 기자

2007년 ‘88만원 세대’부터 시작해, 2011년 ‘N포세대’, 2015년 ‘수저계급론’에 이르기까지 신조어와 함께 떠밀려 나온 이슈들은 기성 주류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적지 않은 이들은 ‘노오력’이라는 단어로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럼에도 청년문제를 말하는 목소리는 일정한 흐름을 타고 한국사회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단군 이래 가장 우수한 세대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세대’, ‘해방 이후 부모세대보다 못 살게 된 최초의 세대’와 같은 얘기 정도는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수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정부와 지자체는 각종 청년일자리 활성화 대책을 내놓고 창업지원을 강화했다.

“그런데 이젠 일자리 문제가 청년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고?” 기성세대 입장에서야 난감하다. “취업이 안 돼 죽을 거 같다고 해서 일자리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데, 도대체 뭐 어쩌자는 건가?”

사실, 이 지적의 핵심은 기존의 일자리 양산책으로는 전체 청년문제는커녕 일자리 문제조차도 제대로 개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제주지역에 단기간 내로 양질의 일자리 수천 개를 후다닥 만든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제조업 기반 대기업이 제주로 올 가능성도 극히 낮고, 외부 기업 유치에 목매는 건 바람직한 방식이 아니다. 당장 공무원이나 공기업 채용 규모를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라는 것쯤은 누구나 안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스매치를 하소연 한다. 기업과 대학을 만나게 하려는 수많은 시도들이 명쾌한 답을 얻은 경우는 드물다. 향토기업 육성을 위한 펀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고, 금융으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제안들도 있었으나 현실화된 모습은 찾기 힘들다. 창업 열풍이 있었고, 다양한 층위의 정부 주도 지원책이 나왔으나 성공적인 흐름을 만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런데, 표본을 넓혀보면 상황은 명쾌해진다. 저성장 국면에서 청년 취업난은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겪는 공통적인 상황이다. 기술의 발달이 일자리 수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얘기가 사회학자를 넘어 대중정치인의 입에서도 나온다.

이런 측면에서 ‘나를 찾는 시도를 허락해 달라’는 청년활동가들, 혁신가들의 요구는 낭만적인 게 아니라 처절하게 현실적이다. 그리고 일자리 문제와 직접 연결된다.

경제활동을 본격화하려는 지금 청년세대 대부분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뭔지’,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스스로 탐색해 본 경험이 없다. 진로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학생은 매우 드물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기존 취업시장 내에 빨리 진입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레드오션으로 모두가 미친 듯이 뛰어들게 된 것이다. 올해 3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는 부처합동으로 발표한 ‘청년 일자리 대책’에서 청년 고용부진 원인의 대표적 원인 중 하나로 ‘교육 동질화 등으로 지속된 청년의 선호쏠림’현상을 지목했다.

그렇다면 대학이 할 일은 분명해진다. 열심히 학생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데 밖에서는 유능한 인력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위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요구하고, 안에서는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대놓고 취업사관학교’가 됐다고 한탄한다면 새로운 대안을 찾는 게 현실적이다.

구체적인 실마리는 멀리 있지 않다. 한국교육학회가 6월 22일과 23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개최한 연차학술대회의 주제는 ‘융복합 시대의 공교육 혁신’이었다.

첫 날 기조강연에서 손동현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전망이 밝은 응용학문 이수를 위해서는 기초학문을 강제로라도 이수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그 제안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이에 앞선 현실진단이었다. 그는 현재 시대적 전환이 대학에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문제해결 능력을 함양하는 데 귀착한다”며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는 것이 문제해결능력”이라고 말했다.

문제해결능력은 최근 혁신가들이 가장 주목하는 개념이다. 나와 가까운 일상의 문제를 발견하고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는 ‘체인지메이커 교육’이나 구성원들의 필요에 따라 자발적으로 뭉쳐 대안을 찾는 학교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역량이다. 문제해결 능력을 고도화하기 위한 첫 단계가 자기탐색이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 ‘내가 느끼기에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모든 과정이 시작된다.

대기업보다 고용확대에 더 유리하고 한국경제 전반에 역동성을 일으킬 것으로 주목받는 스타트업도 이와 밀접하다. 최근 떠오른 스타트업들은 ‘가까이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테슬라는 환경에 대한 우려에서부터, 우버는 모든 개인이 차를 소유해야하는 비효율에 대한 걱정에서, 배달의민족은 쓰레기가 되는 전단지를 없애고 소비자와 자영업자를 좀 더 합리적으로 연결시켜 줄 방법에 대한 고민에서 탄생했다. 멀리 있는 특수한 사례라고 보기에는 당장 제주 안에 ‘티엔디엔’, ‘우유부단’과 같은 결과물들이 존재한다.

준비가 안 된 청년들에게 보조금을 쥐어주면서 창업시장에 떠밀거나, 기업에 학생들을 정규직으로 조금이라도 더 취직시키기 위해 대학행정이 음으로 양으로 기력을 소진하는 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이젠 누구나 안다.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핵심역량을 키워줄 ‘공통의 판’을 마련하는 게 더 세련된 해법이다.

‘청년문제가 일자리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항변은 일자리 측면에 있어서도 반갑고 현실적인 분석이다. ‘나를 찾는 과정’을 제공하고, 고민의 해결책을 현실적인 모델로 구체화시키면서 자생력을 키워주는 과정을 뒷받침해주는 일은 일시적 지원금보다 더 강력하고 효과적일 것으로 보인다.

특정 개인이, 하나의 대학이, 개별 지자체가 불균형한 산업 구조, 기업의 영세성, 빈약한 사회안전망 문제를 뚝딱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함께 그 문제를 부분적으로 풀어가면서,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는 게 더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특정 개념이나 역량이 만사형통이 될 수는 없지만, 유의미한 시사점이 있다면 취할 것은 빨리 취하는 게 합리적인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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