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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脫)코르셋의 아름다움에 대하여탈코르셋의 해시태그는
시선 권력에 대한 저항
스스로를 삶의 주체로 인식하는 실천 행위다
  • 철학과 김치완 교수
  • 승인 2018.07.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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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완 철학과 교수

 포털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시사상식사전에서는 ‘탈(脫)코르셋’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말 그대로 ‘코르셋’에서 탈피하겠다는 의미로, 코르셋은 여성의 몸이 날씬하게 보이도록 상반신을 꽉 조이는 보정 속옷을 말한다. 탈코르셋은 그동안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한 외적 기준에서 벗어나자는 의미로, 짙은 화장이나 긴 생머리, 과도한 다이어트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탈코르셋을 지지하는 이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에 ‘탈코르셋’을 해시태그(#)로 해 부러뜨린 립스틱 등의 화장품, 짧게 자른 머리카락, 노메이크업에 안경을 착용한 인증샷들을 올린다.” 마지막 수정일이 이번 달 4일이다. 지난 해 10월부터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된 미투 캠페인과 함께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탈코르셋의 열기가 느껴진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탈코르셋의 기원은 제2세대 여성주의(second-wave feminism)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이 흐름은 여성 참정권을 비롯하여 제도적 성평등에 집중되었던 여성주의 담론의 대상을 넓힌 것으로 평가된다. 섹슈얼리티, 가족, 재생산권리(임신과 출산에 대한 일체의 권리), 일상적인 불평등 등을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전후 미국의 경제 활황기를 살았던 젊은 여성들은 여성 스스로의 시선과 엇갈리는 사회적 시선을 부당하게 여겼다. 그들은 여성에 대한 사회의 시선을 대표하는 여성용품인 화장품, 하이힐, 속옷 등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이른바 ‘브라 태우기(freedom trash can)’ 시위와 함께 안티미스아메리카운동도 전개했다.

2014년에 개봉된 <분노할 때 그녀는 아름답다(She’s Beautiful When She’s Angry)>는 이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망한 다큐멘터리이다. 메리 도어(Mary Dore) 감독은 모자와 장갑을 착용한 여성들이 함께 했던 ‘전미여성기구(National Organization of Women)’의 창립, 레드스타킹 선언(Redstockings Manifesto)으로 유명한 급진적인 분파의 출현, 케이트 밀레트(Kate Millett)의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과 ‘지옥으로부터 온 여성들의 국제적 테러리스트 음모(Women’s International Terrorist Conspiracy from Hell)’의 거리연극을 생생하게 담아내었다. 그러면서도 그 도도한 흐름의 내부에서 제기되었던 인종, 성적 지향, 리더십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지 않았다. 이 문제는 여전히 ‘논쟁 중’이기 때문이다.

탈코르셋은 그간 축적되고 강요된 여성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고발하는 행위다. 그런데 “‘탈코르셋’, 시선 권력에 저항과 조롱의 반작용”이라는 제목을 단 기사처럼 우리는 불완전하고 본말이 전도된 태도를 쉽게 보인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화장을 시작했다는 고등학생의 탈코르셋 선언은 ‘왜곡된 여성성을 강요하는 시선 권력이 내면화된 사례’로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같은 맥락에서 탈코르셋이 외모 하향 평준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여성 유튜버들과 남성들의 조롱은 탈코르셋에 대한 반작용이 아니라, 탈코르셋을 불러 온 대상이다. 탈코르셋이 여성의 외모와 관련된 것들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러한 것들을 여성적인 것으로 보는 이른바 “시선 권력”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미투 폭로에서 ‘홍대몰카 편파수사 규탄’ 시위, 낙태죄 폐지 청와대 청원, 상의 탈의 시위”는 역설적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스스로를 주체로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아름다운’ 증거이다. 그러므로 탈코르셋에도 위드유(#With You)가 필요하다. 여기에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화장을 지우는 것이 탈코르셋의 전부가 아니듯이, 비비탄(비혼과 비출산 탄탄대로)도 탈코르셋의 본질이 아니라는 제대로 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탈코르셋은 “꾸미고 싶으면 꾸미는 거고 꾸미기 싫으면 꾸미지 말고 살면 될” 자유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가꾸어나가는 담론적 실천 행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철학과 김치완 교수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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