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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문학상 덕분에 글쓰기 재미 붙여가작 소감
  • 문소연 국어교육과 4
  • 승인 2018.07.04 15:27
  • 댓글 1
일러스트 김시언(언론홍보학과 4)

 

변신에 관한 고찰

나는 오늘도 바퀴벌레를 배웅한다.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갈색의 손, 사실 다리가 더욱 정확한 표현일 그 것이 나를 향해 흔들린다. 나도 마주보며 손을 흔든다. 햇빛을 받은 그의 껍데기가 반짝거린다. 그 장면은 간혹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목이 조금 늘어난 회색 티에, 초록색 추리닝 바지를 입었다. 맨발에 삼선 슬리퍼를 신고 그는 가까운 도서관으로 향한다. 막대기 같이 얇은 다리에 간신히 끼인 슬리퍼가 힘겨워 보였다. 바퀴벌레는 조금 굽은 등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우습게도 그는 이족보행을 한다. 나는 문을 닫는다.

* * *

별 다를 것 없는 날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귄지 7년이 된 날이기는 했다. 동거를 시작한 지는 3년이 된 해였다. 아침이면 나는 침대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을 차리고 회사에 나갈 준비를 한다. 그 즈음 K는 일어나서 같이 아침을 먹는다. 그 뒤 나는 회사로, K는 도서관으로 출근을 한다. K는 5년 째 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고시공부로 자주 보지 못하게 되자 먼저 동거를 제안한 것은 나였다. K는 고민 끝에 허락을 했고, 생활비는 모두 내가 감당하고 있었다.

어찌됐든 평소와 똑같던 그날 아침, 나는 알람을 끄고 눈을 뜨자마자 침대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둔탁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고 그 여파로 내 옆에 누워있던 바퀴벌레가 눈을 비비더니 몸을 일으켰다.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왜 그래?”

익숙한 목소리였다. 순간적으로 생각난 것은 카프카의 ‘변신’이었다. 뭐가 문제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그 소설을 읽은 지는 10년도 넘었고, 걸리는 것이라고는 어제 사과를 먹은 것뿐이었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이었다. 순식간에 온갖 생각들이 엉켜 지나갔다. 왜. 도대체 왜.

“괜찮아?”

“무서운 꿈을 꿨어.”

이상한 음계로 내뱉어진 대답에 바퀴벌레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다시 한 번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졸음에 귀찮은 듯 조금은 꾸며진 그 목소리는 분명 K의 것이었다. 표정은 알 수 없었다. 바퀴벌레의 표정을 내가 읽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 먼저 씻고 올게.”

그렇게 말하며 바퀴벌레는 침대에서 나왔다. 나는 여전히 멍한 상태였다. 머리는 혼란으로 뒤섞여있었다. 당황. K에 대한 동정. 미래에 대한 걱정. 관계에 대한 고찰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욕실에 있는 거울이 떠올랐다. 갑자기 자신의 모습을 본 K는 분명 충격을 받을 것이다.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K, 잠깐만!”

재빨리 일어나 따라갔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바퀴벌레는 세면대에 서서 양치질을 하고 있었다. 거울에는 내가 알던 K가 양치거품을 잔뜩 물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여전히 바퀴벌레가 서 있었다.

“왜?”

양치거품 때문에 뭉개진 발음으로 바퀴벌레가 물었다. 나는 대답 않고 서있다 핸드폰을 가져왔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 안에는 사람인 K가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천천히 의자로 가 앉았다. 여전히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오늘따라 왜 그래, 진짜?”

K가 씻고 다가왔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사람만한 바퀴벌레는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움찔거리면서 그를 피했다. K다. K야. 나는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속으로 되뇌었다.

“미안해. 몸이 좀 안 좋아. 회사에는 병가를 내야겠어.”

“같이 병원에 가줄까?”

진짜 아파 보였는지 이번 걱정에는 꾸밈이 없었다.

“아냐. 한숨 푹 자면 나을 것 같아. 근데 아침은 못 차려주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다시 침대로 가자. 오늘은 같이 있어줄게.”

다정한 그 말에 소름이 끼쳤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팔을 쓰다듬으며 겨우 대답을 했다.

“아니야. 가.”

내 눈빛에 K는 반박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너 나가는 거 보고 다시 잘게.”

K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계속 나갈 준비를 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도서관에 갈 준비는 딱히 할 게 없었다.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책가방을 매는 것이 다였다.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그의 옷은 이상하게도 바퀴벌레의 몸에 딱 맞아떨어졌다. 그가 문을 열려고 현관에 간 순간, 심장소리는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울렸다.

“푹 쉬고 있어.”

K가 문을 열었다. 문 너머로 사람 두어 명이 지나갔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심장이 멈추었다. 모든 피가 빠져나가는 듯 했다. 곧 문이 닫혔다. 맨발로 현관으로 달려가 다시 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햇살이 들어왔고, 거리에는 커다란 바퀴벌레가 책가방을 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옆으론 사람들이 지나치고 있었다. 어린 아이 셋이 웃으며 문 앞을 뛰어 지나갔다. 근처에서 새소리도 들려왔다. 평화로웠다. 나는 황망히 그 풍경을 바라보다 다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비척비척 침실로 걸어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뒤집어썼다. 잠깐 이상해 진거야. 잠깐. 한 숨 푹 자면 괜찮아질 거야. 한기가 몰려왔다.

나는 스스로가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여전히 바퀴벌레인 K를 확인하고 나는 곧바로 정신과 상담을 예약했다. 그러나 그 것은 내게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의사가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대로 나는 계속 고시에 떨어지는 K를 보며 미래를 불안해했고, 은연중에 그를 한심하게 여겼으며, 모든 생활비를 내가 부담하는 데 불만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의사가 완곡하게 말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한, K를 혐오하는 감정이 내 안에 숨어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K를 사랑했다. 의사는 그 사실을 간과했다. 그는 단순히 내 마음을 발가벗긴 뒤 세치 혀로 수치심만을 덕지덕지 발라주었다. 나는 두 달 동안 꾸준히 상담을 받고 약을 먹었다. K는 여전히 바퀴벌레였다. 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우습게도 K가 바퀴벌레로 변한 뒤 내가 떠올린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였다. 우리는 같은 대학교를 다녔다. 독서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며 친해지고, 시간이 지나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취향이 비슷했으며 성격도 잘 맞았다. 누구보다 뜨거운 커플이었다고 말하긴 힘들지만, 서로 조심하고 배려하며 오랜 기간을 사귀어왔다. 나는 당연히 K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 믿어왔다. K도 마찬가지일거다. 그가 고시에 합격하여 자리를 잡기만 하면 바로 결혼을 하기로 약속했다. 나는 K가 금방 합격할 줄 알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성실했으며 성적도 좋았다. 그렇게 1년, 2년이 지나갔다. 나는 불안해졌다. 남자가 고시에 합격한 후 오랜 기간 사귀었던 연인을 버렸다는 수많은 일화들. 공부하느라 한 달에 겨우 한두 번 마주하는 피곤한 K의 얼굴. 어느 순간 찾아온 권태기. 그 것들은 뒤섞여 내게 혼란과 두려움만을 안겨주었고, 나는 결국 K에게 같이 살자고 엉엉 울며 빌었다. 아침과 밤뿐이지만 매일 그의 얼굴을 보고 같이 잠들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3년, K가 고시공부를 시작한 지는 5년이 지났다. 옅지만 불안감은 여전했다. 오히려 내가 K를 뒷바라지 한다는 자만, 그리고 이 대가를 받아내겠다는 보상심리만이 더해졌다. 나는 인정해야 했다. 바뀐 것은 K가 아니라 나였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면 7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다. 종 종 야근을 해서 새벽 한 시가 다되어 집에 들어가기도 한다. 집에 오면 가장 먼저 샤워를 하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쌓여있는 설거지를 하기 시작한다. K가 야식으로 라면을 먹은 듯하다. 청소를 하지 않은 지 이틀정도가 지났지만 오늘은 너무 피곤하므로 내일로 미룬다. 아마 내일도 야근을 하지는 않을 거다. 언젠가 집에 들어와 바닥에 널브러진 빨래를 모아 세탁기에 돌리고, 그 사이 설거지를 하다 운 적이 있다. 스스로에게 든 회의감이었다. 나는 힘들게 일을 하다 집에 들어왔는데 편하게 공부를 하던 K는, 분명 핸드폰도 보고 산책도 하며 노닥거렸을 그 K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나는 왜 모든 생활비를 부담하면서 집안일도 온전히 혼자 하고 있는가. 물론 내가 먼저 집안일은 신경 쓰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하긴 했지만, 나를 사랑한다면 적어도 설거지 정도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헌신의 끝은 결국 그의 배신이 아닐까. 그럴 때는 K를 향한 불안과 분노, 혐오가 끓어오르다 결국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로 결심한 것은 자신이었다는 바보 같은 자기반성이 뒤따랐다. 내가 선택한 거야. 나는 K를 사랑해. 그러나 일이 힘들 때면 혐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럴 때면 K를 향한 내 태도는 어딘가 냉랭해진다. K는 눈치가 없는 편이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모르는 척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정말 저 바퀴벌레는 내 혐오가 만들어낸 껍데기인 것일까.

다행히 K가 바퀴벌레가 되기 전 날, 우리는 관계를 가졌다. 오랜 기간 교제해온 우리에게 섹스는 어느 순간 의무가 되었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슬슬 오랜만에 해야지, 하는 것이 우리들의 섹스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바퀴벌레와 몇 달 동안 같이 살면서도 섹스를 강요받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흔한 입맞춤도 사라졌지만, 눈치가 없는 K는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새삼 우리 사이에 스킨십이 얼마나 적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한 때 그게 불만인 시절도 있었다. 웃기게도 그가 바퀴벌레가 된 현 시점에서는 참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리고 매번 바퀴벌레의 옆에 누워 잠들 때마다 나는 내 스스로가 이해되지 않았다. 정말이지 비상식적인 일이었다. 매일 밤 바퀴벌레 옆에서 뭐하는 짓인지. K가 바퀴벌레로 변한 것도 변한 거지만, 그걸 말하지 않고 혼자서 감내해내는 내 자신도 이상했다. 단순히 그의 공부에 방해가 될까하는 걱정 뿐 만이 아니었다. 나는 두려웠다. 그러나 무엇이 두려운 지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어, K 앞에서 이에 대해 입을 뗄 수 없었다. 그런 주제에 바퀴벌레에게서 도망가지도 못했다. 우리가 쌓아온 시간과 애정이 나를 묶어 놨다. 끔찍한 하루가 계속되었다.

* * *

“K야.”

“응?”

오랜만에 같이 침대에 누운 날이었다. 나는 내 옆의 바퀴벌레에게 물었다.

“넌 내가 바퀴벌레로 변하면 어떨 것 같아?”

“갑자기 무슨 소리야.”

바퀴벌레의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내가 바퀴벌레가 되지 않는 이상 평생 알지 못 할 것이다.

“그냥. 얼마 전에 ‘변신’을 한 번 더 읽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음……. 잘 모르겠는데.”
“그래?”

나는 무엇을 바라고 물어본 걸까.

“그래도 일단은 너한테 말하겠지.”

“…….”

“그리고 같이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해결이 불가능하다면?”

“…….”

“…….”

“왜 그런 상상을 해. 어차피 실제로 일어날 리 없는 일인데. 자자.”

나는 바퀴벌레의 표정은 읽을 수 없지만, K의 침묵은 읽을 수 있었다. 7년을 넘게 들어온 소리다. K는 내가 바퀴벌레가 된다면 나를 버릴 것이다.

* * *

K는 매주 일요일엔 공부를 하지 않는다. 페이스 조절을 위해서다. 우리는 가끔씩 밖에 나가 데이트를 했고, 대부분은 그냥 집에서 쉬었다. 동거를 시작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나는 11시가 다 돼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K는 TV를 보고 있었고, 싱크대에는 라면냄비가 있었다. 테이블에는 라면 국물이 조금 튀어있었다. 나는 한숨을 쉬고 테이블을 닦은 다음 K의 옆으로 갔다. 토요일 예능의 재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빨래 돌려야 하는데, 뭔가 비올 것 같네.”

나는 빨래가 쌓여있는 바구니를 힐끗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날씨 검색해봐.”

나는 협탁 위에 핸드폰을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눈앞에 보이는 K의 핸드폰을 집었다. 날씨 보는 어플이 어디 있더라. 순간 카톡이 왔다.

[오빠 뭐 해요?]

익숙한 이름이었다. K와 같이 스터디를 하는 과 후배였다. 3살인가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예전에 얼굴을 한 번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메신저로 들어가 확인을 했다. 프로필 사진은 자신의 사진이었다. 예쁘게 화장을 한 얼굴은 자신감이 넘치고 싱그러웠다. 나도 모르게 내 피부를 더듬었다. 20대 중반부터 피부는 처지기 시작했고 옅은 주름이 생겨났다. 고시 공부 한다는 애 프사가 이게 뭐야. 합격은 글렀네. 사진에는 어깨선과 쇄골, 그리고 가슴선이 은근하게 보였다. 싸 보인다.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 난 사진이네. 가슴은 분명 수술일 테지. 남자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딱 봐도 알지. 내 몸이 아무도 눈치 못 챌 정도로 아주 살짝 작아졌다. 프로필 사진에서 나와 대화내용을 보았다. K는 TV에 집중하느라 내가 자신의 핸드폰을 보는 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가끔씩 이어지는 대화의 주 내용은 공부였다. 교재, 인터넷 강의, 이해가 안 되는 내용, 스터디 조정. 그러나 뜨문뜨문 섞여있는 그들의 잡담은 내 눈에서 그 부피를 부풀려 나를 잠식해갔다. 오빠 여기 가봤어요? 맛있던데. 담에 한 번 가 봐요. 힝, 공부하기 싫다. 놀아줘요.

“K야.”

“응?”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K가 답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나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알았다. K는 이 후배에게 별 마음이 없다는 것을. 다만. 다만.

“……아냐. 재밌어?”

“아니. 요새는 재미있는 예능이 없네. 점심이나 먹을까.”

“그래. 보고 있어. 대충 밥 차릴게.”

당연하게 나는 말한다. 나는 왜 벌써 전업주부를 자청하는 걸까. 아니지, 돈을 벌어오는 것도 나이니 전업주부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너에게 돈을 바치고 식모처럼 대부분의 집안일을 내가 하고 있음에도. 그럼에도 너는 이제 나를 예전처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오랜 시간 사귀어왔고, 이제 서로에게 너무 익숙한걸.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의 애정을 느끼고 싶은 것은 내 욕심인걸까. 지금 이 집 월세와 생활비는 전부 내 돈에서 나가는데. 이런 내 희생을 너는 어째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 이런 독박이 억울하다가도 고시 공부에 전념해야하는 너이기에 목구멍까지 차오른 내 말은 끝내 내뱉어진 적이 없다. 다시 한 번 반복된다. 너를 위해 거의 모든 집안일도 내가 하는데. 이런 나를 위해 너는 열심히 공부 하고 있을까. 안 보니 알 수가 있어야지. 내가 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는 동안 네가 공부에 집중하지 않고 놀고 있는 상상만 계속 하게 된다. 어린 여자 후배랑 카톡으로 시시덕거리기나 하면서. 이렇게 고생하면서 네 뒷바라지를 하면 뭐할까. 몇 년 째 고시에서 떨어지는데. 사실 네가 고시에 붙는 것도 걱정이 된다. 분명 젊고 예쁜 것한테 가느라 날 버리겠지. 나쁜 새끼.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래. 다른 여자한테 가버리면 결국 후회하겠지. 나 같은 여자는 없었다면서. 아니, 어쩌면 행복하게 잘 살지도 모르지. 혼기도 놓치고 전 남자친구와 동거하느라 혼삿길도 막힌 나만 불행하겠지. 그렇게. 나만……

“밥 먹어.”

안다 나도. K는 한 결 같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고마워.”

내가 식빵에 잼만 내놓아도, 삼일 연속으로 라면만 먹게 해도, 늘 ‘고맙다’고 말하는 사람이 K다. 예전과 같은 열정은 없을지언정 여전히 우리의 관계는 돈독했다. 문제는 다만 나를 좀먹어가는 불안감이었다.

* * *

눈을 떴다. 여전히 내 옆에는 바퀴벌레가 누워있었다. 순간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내가 미쳤지. 세 달 동안 바퀴벌레 옆에서 자고 있어. 그것도 사람만한 바퀴벌레 옆에서. 익숙해진 징그러움에 소름이 끼쳤다. 웃음이 터지듯 한 번 새어나오더니, 계속해서 이어졌다. 미쳤어, 미쳤어. 나는 왜 이 짓을 계속 하고 있는 거야. 내 웃음소리에 바퀴벌레가 꿈틀거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미친년 마냥 웃고 있던 얼굴을 순간 무표정으로 바꿨다. 스스로가 참 희극적으로 느껴졌다.

“왜 그래.”

바퀴벌레가 이상하다는 듯 물어왔다. 앞으로의 고시 시험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재작년부터 계속 2차 시험까지는 합격했던 그였다. 바퀴벌레는 이번에는 예감이 좋다고, 자신감을 내비쳐왔다. K는 신중한 편이었고, 지금까지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정말 최종합격하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바퀴벌레가 법정에 서게 되는 걸까. 웃음이 다시 새어나왔다. 우리는 결혼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평생 바퀴벌레와 한 침대에서 일어나게 되는 거야? 바퀴벌레와 밥을 먹고 섹스를 하고 그렇게 아이를 낳아서.

“J야?”

과연 합격을 하고 나서도 K가 바퀴벌레일까?

* * *

내가 계속 답하지 않자 K가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나는 본능적으로 뿌리쳤다. 바퀴벌레 따위 지긋지긋했다.

* * *

일이 바빠져 야근이 잦아졌다. 다행인 일이었다. 바퀴벌레도 공부를 하다 새벽에야 집에 들어왔다.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 침대에서야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달리기 경주에서 막판 스퍼트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당장 눈앞의 시험에 집중하느라 바퀴벌레는 내가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리가 세 달이 넘게 키스를 하지 않았고, 대화도 길게 이어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매주 일요일마다 내가 약속이 있다며 집을 나갔다는 것을. 가끔씩 그가 닿을 때마다 흠칫거리는 것을. 7년이 만난 지금도 나는 K가 눈치가 없는 것인지, 없는 척을 하는 것인지 확신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그의 그런 무덤덤함이 좋았고, 그만큼 싫었다.

어느새 그의 3차 시험 날이 다가왔다. 나는 늘 그렇듯 그에게 초콜릿을 쥐어주었다. 회사에 가야해서 시험장 앞까지 배웅하진 않았다. 부담스럽지 않게 호들갑 떨지 않고, 그러나 신뢰를 가득 담아 응원을 했다. 사실 이제는 상투적일 수밖에 없다. 바퀴벌레가 씩씩하게 걸어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 애인 시험 날 아냐?”

점심을 먹는 중이었다. 새삼 떠올랐다는 듯 회사동료가 말을 걸어왔다.

“네.”

“원래 이 때 월차 쓰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나는 항상 월차를 쓰고 그의 시험장 앞까지 배웅을 했었다. 아니다. 2년 전에 한 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늘 배웅을 하지 않았어도 그는 그렇게 실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밥에서 흙 맛이 났다.

퇴근하고 집에 왔다. 오기 싫었다. 최대한 더 앉아 있으려고 회사 의자에서 밍기적 거리다, 스스로의 꼴이 웃겨 일어났다. 어두운 집이 나를 반긴다. 이제 바퀴벌레가 올, 아니 K가, 아니 바퀴벌레가, 아니, 아니.

“.......”

K의 시험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그는 2차 시험에 합격한 해부터, 최종 시험이 끝나면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얼굴을 보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합격에 대한 기대와 이번에도 마찬가지 일거라는 실망, 기약 없는 기다림에 대한 지침, 하지만 그래도 놓지 못하는 한 가닥의 희망이 다 드러났을 내 얼굴. K는 그 표정을 버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 또한 나를 제어할 수 없어 그저 결과가 나올 때 까지 그를 내버려 두곤 했다. 그러니 오늘 바퀴벌레는 이 집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바퀴벌레와 굳이 같은 침대에 눕지 않아도 될 것이다.

씻고 부엌으로 향했다. 목이 말라 무의식적으로 냉장고에서 주스를 꺼내 컵에 따랐다. 시원한 주스는 벌컥 벌컥 목구멍 안으로 잘도 들어갔다. 달았다. 그제야 주스의 겉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사과주스였다. 원래 딱히 좋아하던 맛도 아닌데 오늘따라 유난히 입에 감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부엌 불을 키지 않았구나. 어두운 부엌이 싸늘하다. 빈 잔을 봤다. 아니다. 컵 바닥에 사과 주스 몇 방울이 남아 있었다. 실제로 사과가 박히면 그 거대한 바퀴벌레는 죽을까?

“하하하…….”

내가 미쳤구나. 바퀴벌레라 살다보니 나마저 벌레가 되어버렸네.

나는 정말, K를 사랑했을까?

* * *

오늘은 K의 최종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과거처럼 떨어졌다면 그는 힘없는 미소로 내게 안길 것이고, 합격을 했다면 꽃다발과 반지를 사서 올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했었다. 나는 매년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그 결과를 확인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집은 풀옵션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쌀 짐이 많지 않았다. 소모품과 K와 관련된 모든 것을 버리니 큰 캐리어 두 개면 족했다. 문을 열었다. 얼마 안 있어 K는 이 빈 집에 올 것이다. 그 것이 사람이든, 벌레이든.

나는 도망쳤다. <끝>

 

 

문소연 국어교육과 4

운이 좋아 작품이 가작으로 선정됐네요. 나름대로 열심히 쓴다고 썼는데 따로 소설 쓰기에 대해 배운 것도 없고 혼자서 끄적여 본 게 전부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도 백록문학상에 제출하려고 소설을 쓰게 되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릴 땐 제가 이렇게 소설을 써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해봤는데 말이에요. 덕분에 평생 할 수 있는 취미가 하나 생겼어요. 다음에는 한 번 장편소설도 써보고 싶네요.

급하게 제출하려다보니 제목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어서 조금 촌스러운 제목이 쓰였어요. 제목에서 말하듯이 이 소설은 프란츠카프카의 「변신」을 생각하며 쓴 소설이에요.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도 하고, 어릴 때 「변신」을 재밌게 읽어서 실제로 가족 혹은 나 자신이 벌레로 변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을 하곤 했어요. 또한 제 전공 특성 상 주변에 고시생들이 많이 있고, 그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안타까웠기 때문에 고시생이라는 설정을 꼭 넣고 싶었어요. 이 두 개가 합쳐져 나온 것이 「변신에 관한 고찰」이구요.

어쨌든 가작이라도 상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요새 작문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많이 없는데 그래도 백록문학상이 계속 유지돼서 저처럼 글쓰기에 흥미가 생기는 친구들이 많아졌음 좋겠네요.

문소연 국어교육과 4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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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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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모씨 2018-07-12 14:02:08

    우연히 들어왔는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도 생각이나고.. 감정변화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앞으로도 펜 내려놓지 마시고 더 좋은 글 써 내려가시길 응원하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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