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받았던 사회적 존경과 대우, 언론에 대한 신뢰가 많이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인 ‘기레기’가 고유명사가 돼가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기자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냉담하기만 하다.

기레기가 일상화된 것은 2014년 4월 16일 전라남도 진도 해안에서 벌어진 세월호 침몰 사건이후 부터였다. 세월호 침몰 사건에 대한 미디어의 재난 보도는 물론 취재 기자의 태도와 행태에 대해 국민들이 비난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였다. 재난보도는 재난 초기에 국민의 상황파악을 돕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사실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재난이 어느 정도 수습돼 가는 시기에는 재난의 원인과 정확한 피해규모, 상황에 대한 재정리가 요구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보도는 그렇지 못했다.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버젓이 ‘전원 구조’라는 대형 오보를 냈는가하면 어린 학생에게 친구가 죽은 사실을 알고 있느냐며 마이크를 내밀었다. 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모색하기보다 사망자 보험금이 얼마인지 먼저 계산했고 대학특례 입학 등 가짜뉴스가 빈발했다. 피해자와 가족의 슬픔과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선정적 보도를 일삼았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은 미디어스의 칼럼 기고문(2018, 2, 8)에서 기자들을 기레기라고 부르는 이유를 5가지로 접근했다. 첫째는 무분별한 기자들의 양산이다. 미디어가 너무 많고, 맞춤법 등의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버젓이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둘째는 익명의 관계자로 소설을 쓴다. 사실보도를 생명으로 삼는 뉴스보도에서 허구이자 가상의 인물이 등장한다. 셋째는 기자들이 갑질을 한다. 넷째는 정파성으로 사태를 왜곡한다. 끝으로 기자들이 독자나 시청자들을 가르치려고 들기 때문에 기레기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지적 역시 사실은 언론 스스로 초래한 측면이 크다. 기자들의 기사를 무기로 삼은 광고나 사업 유치 활동, 정치·경제 권력과의 유착, 기자라는 직업의 희소가치 상실 등 모두 부정적인 현상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기자들이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강자에 가려진 절반의 진실을 밝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그게 기자의 임무이고, 저널리즘의 기능이다. 언론을 ‘공기(公器)’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