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사회학자인 벡(Beck)은 「위험사회」라는 저서를 통해 산업화와 근대화가 기술의 발달과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대신, 우리는 예외적 위험이 아니라 일상적 위험이 만연한 위험사회에 살게 됐음을 말했다. 그가 이 책을 쓴 때는 체르노빌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였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는 각종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같은 훨씬 더 위험스러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가습기 살균제, 발암물질 생리대·기저귀, 메탄올 물티슈, 라돈 침대 등과 같은 화학물질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이러한 화학물질과 중금속은 즉각적인 사인으로 작용하지 않더라도 한번 몸속에 들어오면 쉽게 배출되지 않아 인체내에 쌓일 수 있고, 결국 면역 체계가 무너져 각종 질환을 야기하는 것으로 알려져서 국민들의 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성인 1,54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년 생활화학물질 위해성 국민인식 조사’ 결과, 응답자의 40.7%가 ‘화학물질로 인한 위험이 너무 두려워 떠올리기조차 싫다’고 답했다. ‘화학물질 접촉을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한다’는 응답자는 54.3%, ‘두려움 탓에 식은땀이 나거나 호흡이 가빠지는 등 신체 증상을 경험한 적이 있다’는 응답자가 24.8%에 달했다. 극도의 두려움과 기피 행동, 신체 증상을 모두 경험한 사람들도 15.4%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대학 학생회관 앞에는 한라터라고 불리는, 족구장과 농구장으로 쓰이는 장소가 있다. 그 구석의 모퉁이쪽, 사람들의 눈에 잘 눈에 뜨이지 않는 곳에 서있는 팻말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한라터에 설치된 우레탄 농구장 및 족구장에서 유해성 중금속 성분이 기준치보다 초과한 것으로 나타나 시설 이용을 자제해 줄 것을 당부드리며, 예산이 확보 되는대로 바로 교체하여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불가피하게 사용하실 때는 아래의 안전수칙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우레탄 농구장 및 족구장 위에 앉지 않기

- 직접 접촉시 손·발 등을 깨끗이 씻기’

이 팻말이 설치된 시점을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필자의 눈에 띤 것은 작년 여름방학 때였으니 고지된 지 적어도 1년 이상이 경과하였다. 어떤 중금속이 얼마나 초과 검출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운동장은 여전히 공식적 체육행사는 물론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일부러가 아니더라도 운동중 우레탄 바닥위에 넘어지기도 하고, 바닥에 접촉한 공을 손이나 몸으로 접촉하면서, 그것이 몸으로 흡수되었을 때의 위험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아마도 학교 당국은 예산부족을 탓할 것이다. 하지만 예산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다. 우리 대학 구성원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는 가시적인 문제부터 우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마저 곤란하다면 안전을 위해 해당 장소의 폐쇄조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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