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던 세대에게 먹는 일은 생존을 위한 지난한 노력이었다. 먹기 위해 공부하고 취직하고 일을 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살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으로 돈을 벌고 먹는 일이 즐거움인 시대가 되었다. 방송에서는 먹는 것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먹는 것이 소비의 주축이 된 느낌이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먹방 규제’ 방침이 알려지면서, 국가가 먹는 것마저 규제한다는 국가주의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우리는 어떻게 먹고 있기에 이런 논쟁에까지 이른 것일까?

먹을 ‘식(食)’이란, 사람 ‘인(人)’자에 좋을 ‘량(良)’자가 합해진 말이다. 즉, 먹는 행위는 우리 몸에 좋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일이다. 먹음은 평등한 행위이자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욕구이다. 이처럼 중요한 먹음이지만,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할 경우 문제가 발생한다.

붓다는 처음 수행할 때 모든 음식을 끊고 고행하다가, 그것이 건강과 깨달음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알고 이를 중지하였다. 음식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음식에 집착하는 탐욕이 문제임을 지적하고 중도(中道)의 식사를 제안한다. 그리고 식탐(食貪)을 조절하지 못하는 수행자를 위해 ‘탁발(托鉢)’과 ‘오후불식(午後不食)’의 계율을 만들었다. 불교에서는 식탐을 조절하지 못하는 데서 인간의 육체와 정신이 무너지고, 윤리성에 문제가 일어나며, 우주자연과의 관계가 어긋난다고 본다. 기독교에서도 수도자들에게 식탐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오늘날 수행자나 수도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먹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는 삶의 활력소이다. 전통적으로, 가장 편안한 인사가 “식사하셨습니까?”였고, 통과의례에서 으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문화이니, 우리 삶의 중심에 먹는 일이 자리한 것은 자연스럽다 하겠다. 지난날에는 먹는 입을 의미했던 ‘식구(食口)’가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정을 나누었지만, 이제는 바쁜 일상으로 식구들끼리 먹는 것이 오히려 서먹해진 세상이 되었다. 즐겁게 먹는 것, 혼자 먹는 것이 문제는 아니다.

먹는 것이 오락의 소재나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그것은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되고 있다. 도를 넘어서면 무리(無理)가 따르고 결국 좋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 지나친 식탐과 음식의 남용, 게다가 먹는 방송에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우리나라 식단이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풍성한 것은 인정으로 이해하지만, 남겨진 음식들을 대해 아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동물과 가장 다른 점은 먹는 행위에 있다. 인간은 먹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먹으면서 생각하고, 감사함을 느끼고, 먹은 이후의 결과까지 고려한다. 내 몸이니까 내 맘대로가 아니다. 내 몸에 대한 예의도 지키는 것이 인간다운 먹음이다. 지나친 식탐과 남용되는 음식과 과도한 먹는 방송에 대해 성찰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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