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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만큼 나눠야 도리, 받는 사람에게 도움 돼야 진짜 ‘보람’”2008년부터 제주대와 인연, 총 12억1천만원 쾌척
가난과 여성이라는 차별을 이겨내고 사업 성공
기업가로서 사회적 책임, 사회 환원 실천
고추월 회장과 인터뷰를 나눴다.

“죽을 때 돈을 짊어지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번만큼 쓰는 게 도리다. 누구한테 얼마를 주는지도 일일이 세어보거나 돌이켜서 생각하지 않는다.” 제25회 만덕봉사상과 2014년 올해의 아너 대상 등 꾸준한 기부로 나눔에 앞장서온 제주의 대표적인 여성기업가 고추월 월자포장 대표(81)의 기부 원칙이다. 과일노점상부터 시작해 스물두 살에 문을 연 월자상회를 제주에서 으뜸가는 청과도매상으로 키우고, 이윽고 월자포장을 필두로 한 여러 사업체를 길러내기까지 숨 가쁘게 달렸다.

고 대표는 일제강점기이던 1938년 일본 구마모토시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제주로 건너와 아버지의 고향인 구좌읍 세화리에서 자랐다. 하나뿐인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졸지에 장녀가 된 고 대표는 어려운 살림과 다섯 명의 남동생을 돌봐야 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제주시 동문로터리에서 과일 노점상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이어갔다. 여느 또래들처럼 공부에 대한 욕심이나 장래 희망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생활전선에서 악착같이 버텼다.

40대 후반, 월자상회가 자리를 잡고 나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육지에서 온 과일이 나무상자가 아닌 종이상자에 담겨있는 걸 보고 우연히 아이디어를 얻었던 것이다. 1984년에 포장업체인 월자포장을 창립했다. 별 다른 밑천 없이 번번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육지부의 제품과 견주어도 훨씬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구좌읍 하도리에서 행원리 소재 농공단지로 공장을 이전하고 월자포장을 더욱 키워나갔다. 1996년엔 자원재활용업체인 (주)월자제지를 설립하고 2003년에는 폐지재활용업체인 (주)그린자원까지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고 대표는 비결을 ‘운’이라고 꼽았다.

“장사 수완이라고 할 게 별로 없다. 먹고 사는 게 하도 바빠서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좋은 물건 싸게 파는 것, 부지런한 것 그게 통했다고 생각한다. 운도 따라줬다. 지인 중에 날 만나면 항상 ‘고 대표는 어째서 늘 그렇게 기름진 길만 찾아다니느냐’고 말하곤 한다. 과일가게를 할 때도 골라온 과일은 값이 올랐다. 꼭 누가 도와주는 것처럼 운이 틀 때가 있었다”

지금은 제주에서 손에 꼽는 업체로 자리를 잡으며 자수성가한 제주의 여성기업인으로 이름이 났지만 그 과정은 결코 ‘기름진 길’이 아니었다. 사업은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때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무시와 냉대를 받기 일쑤였다. 사업을 확장할 때도, 거래처를 확보할 때도 그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요즘은 여성의 시대라느니, 여자가 더 똑똑하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여성으로 기업을 이끄는 건 어려움이 정말 많았다. 은행은 물론 일수도 돈을 꿔주지 않아서 자본 융통하는 것도 힘들었고, 여자 사장이라고 박대당한 일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내 좋은 품질과 좋은 가격으로 승부했다. 그게 내가 가진 무기였다.” 

고 대표가 기부에 눈 뜬 건 학창시절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여자중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정신없이 먹고 사느라 학교에 제대로 나가본 적 없었는데도 졸업장을 챙겨준 담임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어렵게 살면서도 ‘언젠간 잘 되면 꼭 은혜를 갚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다. 형편이 나아지면서 마침내 학교를 찾았지만 담임선생님은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대신에 담임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리며 모교인 제주여자중학교와 제주여자고등학교에 1억 원의 장학금을 전달한 것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고 대표는 “기부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계획보다는 돈이 값어치 있게 쓰이는 지 관심은 갖는다. 받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어야 주는 사람에게도 보람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번은 목돈을 장학기금으로 내놓고 은행 이자로 장학금을 지급했는데, 정작 학생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이 적어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 이 소식을 접하고 나서 정기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바꿨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월자제지와 월자포장의 연간 매출액을 260억 규모로 성장시키며 ‘버는 만큼 쓴다’는 철학으로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해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손을 내밀었다. 학교 시설 증축이나 장학금은 물론 어려운 이웃에 의료비를 후원하거나, 사회복지시설을 찾기도 했다. 또한 감귤 가격 하락이나 집중호우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했다. 2013년에는 제주 사회복지공동모금 제10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5년간 매년 1억씩 기부목표를 세우고 2회에 걸쳐 2억을 쾌척했다.
2008년부터는 제주대학교와 인연을 맺었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발전기금으로 12억1천만원을 지원했다. 2015년부터는 앞으로 10년 동안 1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매해 5천만원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이를 실천해오고 있다. 제주대는 2014년 고 대표의 기업가로서의 사회적 책임,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 실천정신을 기려 지난해 명예 경영학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이듬해에는 교정에 고추월 대표의 흉상을 건립했다. 기부를 할 때마다 누구에게도 대가를 바란 적은 없었지만, 이는 고 대표에게 잊을 수 없는 큰 기쁨이었다.

그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아침이면 늘 스스로 단장을 마치고 구좌읍 행원리까지 먼 출근길에 나선다. 한평생 몸에 익은 근면성실을 쉽게 떨칠 수 없을뿐더러 아들들이 경영을 맡고 있어도 작업 현장에 와서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대표로서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여전히 거래처 관계자들을 만나서 설득하고 문제를 조율하는 일도 자처하고 있다. 그 동안 맨손으로 일궈온 사업에 대한 애착이 말할 수 없이 크기 때문일 테다.

고 대표는 “어려운 시절에 여성의 몸으로 힘들게 사업해왔고 좋은 결과도 냈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매일 공장에 올 때마다 ‘내가 없으면 어쩌지’, ‘더 열심히 할 걸’ 걱정과 후회가 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열심히 해줘서 뒤를 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고추월 대표 약력
제주시 구좌읍 출신, 1938년
1984년 (주)월자포장 설립(대표이사)
1998년 (주)월자제지 설립(대표이사)
2002년 대통령 표창장
2003년 (주)그린자원 설립2009년 제주 황금불가마 대표(現)
2014년 제주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수여

고추월 대표 발전기금 출연내역
2008년 3천만원(아트홀건립기금)
20010년 3천만원(대학발전기금)
20014년 5천만원(고추월장학기금)
2015년 10억원(대학운영지원금)
2018년 1억원(대학발전기금)

김태연 특별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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