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양 범 지리교육전공 4

“하나의 유령이 한국을 배회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유령이. 그리고 옛 가부장제의 모든 세력들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동맹을 맺었다.” 공산당 선언 첫 구절을 패러디해보았다. 1987년 한국사회에서 여성권익운동이 본격화된 이래로, 요즘만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뜨거웠던 적은 없다.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비합리적인 감정으로만 끝날 줄 알았던 여성혐오가 실존적 공포(나일수도 있었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대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다. 인터넷에선 조롱거리와 웃음거리가 되었고, 기성세대는 과격하다고 손가락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2018년 한국사회는 (맑스 때 공산주의의 처지가 그랬듯) 페미니즘에 ‘불온한 사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이 와중에도 문제는 계속되고 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영화와 광고는 말할 것도 없다. 데이트 폭력에서 나온 ‘안전이별담론’, 포르노화 된 여성의 일상,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디지털 성범죄, ‘00내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 운동, 연 인원 10만 명의 혜화역시위, 웹하드 카르텔까지... 페미니즘이라는 ‘유령’이 계속해서 우리를 부른다. 하지만 사회는 이런 목소리에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 언론은 문제들을 ‘비(非)가시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심신미약, 화학적 거세 등 본능과 질병 탓으로만 돌리면서 젠더에 의한 폭력을 원래부터 없던 것으로 만드는 중이다.

 그래서 필자는 페미니즘을 배우기로 결심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막상 ‘남성 페미니스트’가 되려니 그 이름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갈 길이 멀었다는 생각도 든다. 한국사회의 남성으로서 가부장제의 수혜를 누리고 있음을 인정하고 그것을 내려놓아야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나’라는 존재가 구조적 폭력에 일조하기 쉽다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물론 필자는 많은 남성들이 ‘나는 안 그렇다’고 하는 말을 믿고 싶다. 그러나 나도 모르게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면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런 점에서 페미니즘은 우리에게 ‘불편할’ 기회를 줄 수 있다.

 막상 써놓고 보니 글을 내기 두렵다. 내 생각을 싫어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필자의 두려움은 현재 한국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아니, 용기를 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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