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3.14 목 14:41
상단여백
HOME 기획
100년전 제주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제주항일운동의 시작점이 됐던 조천만세운동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의 역할
3.1절을 맞아 학생들이 만세대행진을 벌이고 있다.

“대한독립만세” 100년전 선조들은 조국의 독립을 희망하며 외쳤다. 일제는 칼과 총을 들이밀며 저지하려했으나 한마음이 된 그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독립운동 등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임시정부 수립에도 큰 공을 세웠다.

2019년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다. 전국각지에서 일어난 항일운동, 제주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제주의 3대 항일운동이라 불리는 법정사 항일운동을 시작으로 조천 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이 지역, 계층 상관없이 제주 곳곳에서 일어났다. 이에 기자는 각 현장을 답사하고 제주항일운동의 모습을 전달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항일기념탑에 있는 3.1독립운동기념탑의 모습.

◇항일기념관을 방문하다

1905년 일제는 대한제국과 강제적으로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통감부에 의한 정치를 시작한다. 조선의 주권은 빠르게 사라져갔고 제주도의 상황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제주도의 행정구조를 개편하고 경찰서를 설치하는 등 본격적인 탄압정책을 시행한다. 1913년에는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해 제주도민의 터전을 빼앗고, 어장은 특정사람에게만 면허를 줘 운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민 대부분은 빈곤과 기아 속에서 살아갔다. 제주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일제에 항거해 다양한 항쟁을 벌이거나 열악한 환경을 탈출하기 위해 일본으로 도항하게 된다.

2월의 어느날,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제주항일기념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제주 지역에 있는 항일독립운동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기념관으로써 애국선열추모탑 및 위패봉안실, 3.1독립운동 기념탑, 기념관 등을 갖추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5인의 군상 조형물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조형물은 5명의 사람들이 기단 위에서 척박한 제주의 상황을 암석으로 표현했고 일제의 침략을 밀려들어오는 파도로 상징화했다. 또한 후손들에게 영원히 계승될 자주독립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독립을 간절히 희망하며 당시 사회를 살았던 그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 문화해설사의 도움을 받아 전시실 내부로 들어갔다. 각각의 전시실에는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눠 1876~1945년의 항일 운동 자료가 전시돼있는데 각 지역마다 진행된 항일운동의 모습들과 관련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조천만세운동의 전개과정

제주지역의 3.1운동은 당시 제주의 조천지역을 중심으로 1919년 3월 21일부터 24일까지 전개된다. 당시 조천은 육지와 통하는 관문으로 중앙의 소식을 접하거나 상업이 발달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러다보니 전통적인 토착양반세력과 유림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이었다. 운동의 발단은 당시 휘문고통보통학교 학생이었던 조천 출신 김장환이 독립선언서를 숨기고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그는 당시 조천의 유림이자 숙부인 김시범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에 대해 설명한다. 시위를 결심하게 된 이들은 조천리 미밋동산(만세동산)에서 동지들을 모으고 날짜를 설정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들은 당시 유림중 명망이 높앞던 김시우의 기일인 3월 21일을 거사일로 잡게된다.

21일 조천리 미밋동산(만세동산)에는 운동을 주도하는 14명의 사람들과 인근 서당생도 등 15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주민 500여명도 동참하며 규모는 확대된다. 이들은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으며 만세행진을 시작했다. 원래 목표인 제주성내까지 행진하려고 했으나 도중에 경찰과 대치했고 김시범 등 주동자 13명이 체포된다.

22일부터 23일까지 전개된 2, 3차 만세운동은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전개됐고, 24일에는 장날을 맞아 부녀자들까지 합류해 1500여명이 참여해 대규모 만세운동이 진행됐다. 조천만세운동의 여파는 서귀포로 이어졌고 삼매봉 만세운동과 해상만세시위로 이어지게 된다.

부성주(문화관광해설사)씨는 “3.1운동 당시 학생들은 정의하나로 ‘조국을 살리겠다’, ‘싸워야겠다’고 말하며 투쟁했다”며 “당시 그들이 흘렸던 피와 땀이 현재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모든 설명을 듣고 기념관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항일애국지사들을 추모하기 위한 백비가 눈에 들어왔다. 백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위로 솓구치는 강렬한 태양빛에 눈이 감기듯 님의 거룩한 발자취 위에 이 산하 산천초목 숨이 멎고 시간이 멈춰서네. 님의 피 끓는 분노와 영혼의 외침이 저 들에 자라난 풀 한포기에도 또렷이 새겨 있네. 님의 울곧은 넋 바람이 되고 물이 되고 하늘이 되어 이 나라 대한을 지키시네’   

◇3.1절 맞아 도내 곳곳에서 열린 행사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도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조천리에서는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참석한 가운데 제주 4대 항일운동을 재현하는 대대적인 만세대행진이 신촌.함덕초부터 조천만세동산까지 2.2km구간에서 진행됐다. 이날 행사에는 제주대 총학생회인 ‘만인’ (총학생회장 김남이 무역학과 4)도 함께 했다.

원 지사는 기념사를 통해 “잊혀진 제주출신 독립운동가들을 한 분도 빠짐없이 찾겠다”며 “독립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도리를 다하고, 존경과 예우로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제주평화나비는 100주년을 맞아 일본영사관까지 3보 1배 행사를 진행하며, 일본군 성노예 제도운영을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 항의의 뜻을 전했다. 

◇항일기념관 방문을 마치며

선열들의 피와 땀으로 지킨 나라였지만 우리는 그 가치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고 있었다. 첫째, 3.1운동을 이끌었던 김장환의 생가 보존상태다. 그의 생가는 터를 알리는 표석만 있을 뿐 쓰레기가 방치돼있고 무너지는 등 제대로 된 보존이 안 된 상태였다. 두 번째, 후손들의 관심도 문제였다. 제주항일기념관은 당시 제주 지역의 항일투쟁과정을 보여주는 곳이지만 제주도민의 관심은 부족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현장체험학습을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방문객이 타 지역인 혹은 외국인이라고 한다.

부성주씨는 “흔히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한다” 며 “과거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어느정도의 역사를 알아야 성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이 강한 이유는 행사가 있을 때 모든 세대들이 참석하고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는 등 하나로 뭉쳐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며 “하지만 한국의 학생들은 자신과 상관없거나 오래됐다고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끈이기에 학생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참고자료=제주도청, 고영철의 역사교실

김해건 기자  webmaster@jejunu.ac.kr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