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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는 소유권이 없어야 한다

프랑스 사상가 피에르 프루동은 사적소유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사적 소유권과 상속을 ‘도둑질’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우리의 법률적 상식과는 맞지 않는 주장이다. 오히려 17세기 영국인 존 로크가 주장한 소유 개념이 적합해 보인다.

로크는 개인이 자신의 노동을 투여해서 얻은 결과물은 그의 소유라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들여다보면 로크보다는 프루동의 생각을 지지하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받은 기술개발에 의해 발생한 기업의 이윤은 재벌총수와 거대 기간투자자의 사적인 소유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의 지원은 곧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거둬둘인 세금일 텐데 말이다.

구글과 페이스북의 화폐적 평가는 정보로부터 나오고 그 정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검색에 의해 축적되지만 집단적 기여는 인정받지 못한다. ‘생산적’인 행위를 통해 기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로부터 이윤을 얻어가는 것은 ‘불로소득’이다. 불로소득이 사적소유권이라는 이름으로 보호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프루동과 로크를 통해 지적재산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학술적인 공동체에서는 연구 결과에 대한 저자의 권리를 인정한다. 다른 이의 연구를 인용할 때에는 명확히 출처를 밝혀야 한다. 타자의 기여와 자신의 성취를 명확히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표절’이라고 지탄받는다.

하지만 거의 모든 이의 연구는 무수히 많은 타자들의 연구성과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다. 학술저작이 끝없는 인용으로 구성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프루동이 지적했듯이 학술적 연구는 연구자가 자신의 영역에 몰두할 수 있게 지원해준 사회 전체에 빚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학술적 연구는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토론할 때에만 그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학술적 연구결과에 소유권을 설정하고 사용료를 내야만 접근하게 하는 것은 학문발전을 가로막는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는 학술적 연구의 저자들이 아니라 거대출판사와 전자저널 관리업체에게 소유권이 있지만 말이다. 

전자저널 관리업체인 누리미디어와 국립대학교 도서관협의회 사이의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었던 학술자료들을 이용하는데 불편이 초래될 수 있다. 서로의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대학측에서는 다른 경로로 자료들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다. 어떤 쪽의 주장이 맞다, 틀리다 판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별 효과도 없고 오히려 대학의 학문적 공동체를 위태롭게 하는 사업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면서 그에 비하면 ‘사소한’ 전자저널 사용료 때문에 소란을 만드는 것은 언짢다. 학문적 내용과 질보다는 일개 일간지의 평가기준에 맞추기 위해 회계법인에 의존하는 대학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학문과 지식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제주대신문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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