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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발칙한 상상
  • 경영학과 양성국 교수
  • 승인 2019.03.1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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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성 국경영학과 교수

봄 햇살이 교정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 월요일 아침 1교시에 강의실로 들어선다. 학생들이 우렁차게 인사하는 것을 기대했지만 앞쪽에 앉아있던 몇 명이 모기목소리로 인사한다. 좋은 아침이라고 인사하지만 반응은 싸하다. 월요일 1교시가 뭐냐? 택시비는 누가 주나요? 라는 무언의 시위인지도 모르겠다. 무시해야 한다. 이유는 다들 잘 아니까.

학생들은 강의를 들으며 스마트폰을 만져야지 하는 유혹과 강의 내내 이어진 잔소리, 협박에 가까운 경고성 멘트 때문에 동공지진을 경험한다. 강의를 끝내고 차를 마시면서 상상에 빠진다. 강의실 교탁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인터넷이 차단되면 분위기가 좋아질까? 이런 기술이 이미 널리 사용 중인데 우리 학교만 모르는 것인가? 창업을 하면 유망할까? 등 쓸모 있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조교샘이 보낸 “교육부 관련 문서를 웹메일로 보냈습니다”라는 문자가 왔다. 귀찮지만 열었는데 “교육부는 2019년에 수당규정을 변경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라는 내용이다. 순간 욱하고 뭔가가 올라오면서 얘네 또 시작이네, 헐~, 어공 등 이상한 말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메일을 닫고 이번 달에 사서 책장에 보관중인 책들을 눈으로 스캔하기 시작한다.

“90년생이 온다”는 요즘것들의 생각을 쪼끔이라도 알 수 있을까 해서 구입한 책이다. 처음부터 줄임말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정신이 없다.

90년대생들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유로 워라벨을 자꾸만 강조한다. 우리나라 공무원은 워라벨이 보장되는 직업인가라는 불경한 생각을 해본다. 90년대 생들의 특징 중 하나는 모든 것이 기ㆍ승ㆍ전ㆍ병맛으로 끝난다고 주장한다. 이해가 안 된다. 꼰대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나, 아님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꼰대의 길을 가버린 것인가? 우울한 마음에 책을 놓는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는 책을 뽑아든다. 뱃살이 꾸는 꿈, 설거지 이론,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라는 소제목에 필이 꽂힌다. 뱃살이 꿈꾸는 것이 가능할까? 책을 안 잡은 다른 손이 상반신과 하반신에 걸쳐 있는 무책임한 비무장지대인 뱃살을 스캔하기 시작한다. 설거지는 적당ㆍ대충ㆍ깨끗하게 헹구면 끝나는 것 아닌가? 설거지 학위를 받아야 설거지가 될까? 설거지를 방치하면 적폐가 된다고 한다. 나는 설거지를 열심히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무섭고 우울해진다.

신입생을 위한 무협지라는 소제목을 보면서, 청운의 푸른 꿈을 꾸고 있을 신입생들에게 무협지를 권해도 될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오해를 막기 위해 일부를 인용해보면 “대학 무림에는 경계해야 할 다섯 사술이 있으니, 꿀강의, 연환계, 사이다, 국뽕, 암기구토가 그것이라. 내용 없이 학점만 잘 주는 꿀강의에 탐닉하면, 근골이 약해지고 정신의 당뇨병에 걸리게 된다. 학연ㆍ지연ㆍ혈연으로 엮는 연환계만 믿고 내공연마에 소홀하면 인간지네의 형벌을 받게 된다. 사이다 발언은 듣는 순간에만 시원할 뿐, 사이다만 들이켜다 보면 논리 내공은 날로 추락하게 된다. 추락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국뽕에 취하면 뇌 혈맥이 뒤틀려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없게 된다. 강의 내용을 달달 외워 답안지에 토한 뒤 곧 잊어먹는 것은 기필코 피해야 내공을 단련할 수 있다.” 사이다를 한 박스는 마신 느낌이 드는데 목은 왜 땡기고 머리가 아픈지 모르겠다.

“일취월장”을 읽으면, 학생들이 더 이상 잘게 쪼갤 수 없는 시간이라는 기본 양념에 땀이라는 소금으로 간을 하고 노력이라는 손맛으로 버무린 레포트를 지금보다 더 자세하게 첨삭지도해 줄 수 있는 교수가 되지 않을까? 이러면 동지들을 배신하는 것인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연구실 앞에 와서 ‘너 죽고 나 살자’고 하면 어떻게 하지? 조교샘이 메일에 대한 답을 보내달라는 문자가 또 왔다. 정신을 차리고 첨부파일을 열었는데 열기 전에 생각했던 것과 반대의 내용이라 당황스럽다.“교육부는 2019년부터 제주대학교 교수들의 수당을 과거 방식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몇 년간 교수들을 들들 볶고 튀겨도 깨가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옛날처럼 기다리기로 했다”는 내용이다. 짜식들 진즉 이럴 것이지.

이제 일취월장은 당분간 금고에 보관해도 될까? 연구실 문을 들어서는 조교를 보며 꿈에서 깬다. 조교를 노려보지만 잘못한 것이 없다는 황당한 얼굴이다.

김샜다는 것을 알까? 일취월장을 보관할 것이 아니라 일장춘몽을 보관해야 할 것 같다.

경영학과 양성국 교수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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