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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거슬러 일본 오사카와 나라를 다녀오다일본 3대 성 중 하나 ‘오사카성’
수도 불교 사원과 유적지 많아
가장 일본다운 일본을 보다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인 오사카를 겨울방학 기간 다녀왔다. 일본은 제주국제공항에서 왕복 비행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현지 물가도 국내와 비슷하다. 또한 동북아시아로서 공통된 문화가 적지 않다. 일본의 깨끗한 길거리와 예의 바른 국민성에 더해 선진국가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 여행초보자들에게 꽤 괜찮은 관광지이기도 하다.                   <편집자 주>
 

오사카성 2층에 위치한 샤치가와라와 후세토라의 모습.

◇  오사카 여행의 필수 코스 오사카성

겨울의 끝자락이라 그런지 맑은 날씨에 좋은 기분을 느끼며 출발했다. 모리노미야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에 위치한 오사카성은 16세기 건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의 통일 후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 건물과 풍경의 조화가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도요토미의 권력욕을 엿볼 수 있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둘레를 못으로 만든 해자가 눈에 띄었다. 가장 아래를 두껍게 그리고 점점 둘레를 줄여가며 쌓은 성벽 아래 넓게 파인 해자와 그 가운데 굳게 선 덴슈가쿠는 절경이 따로 없었다. 신바시 다리를 지나 오사카성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오데몬으로 들어가니 큰 공원이 펼쳐있었다. 잔디 반 사람 반이었지만 조금 멀리 보이는 오사카성은 굉장했다. 질서를 지키며 오사카성 내부로 들어가니 엘리베이터와 계단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기다리는 것을 질색하는 나는 계단으로 들어섰다.

2층으로 올라서니 계단 바로 앞에 발톱을 세우고 있는 호랑이와 머리는 호랑이 몸통부터 물고기인 금빛 장식물이 있었다. 일본에는 호랑이가 없다고 들었는데 장식물이 호랑이인 점이 이상해 검색해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인물로 조선을 약탈하고 조선의 대표적 맹수인 호랑이를 대거 사냥했다. 당시 일본군은 호랑이의 실물을 처음 접해 그 기에 압도당했고 그를 재현한 것이 바로 이 금빛 호랑이인 ‘후세토라’라는 추측이 가장 앞선다.

오사카성에서 우연히 조선의 호랑이를 마주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언짢았다. 마치 우리 집에서 사라진 물건이 식사하러 들어간 가게에서 발견된 기분이었다. 한반도 침략이 드러나는 유물을 보고 있으니 가슴 한켠이 아릿했다.
 

나라마치의 길거리와 상점에는 관광객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들이 판매된다.

◇ 일본을 가장 잘 나타낸 나라마치

나라마치는 일본 나라 현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로 여행 중 일본의 모습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곳이었다. 이곳은 에도시대 말기이자 메이지시대인 1800년대부터 현재까지 그 위상을 지키고 있다. 간고지 절이 헤이조쿄로 천도 이후 마을 건설이 시작돼 절과 신사의 마을에서 상업의 마을로, 상업의 마을에서 관광의 마을로 다양한 시대를 살아온 마을이다.

상점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엔 쓰레기나 담배꽁초가 전혀 없었다. 심지어 자전거도 줄지어 세워져 있었다. 길가엔 작은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어르신이 여럿 계셨다. 지나가며 흘끔 훔쳐보니 다들 자신만의 시선과 스타일로 거리 곳곳을 스케치북에 담고 있었다. 오사카는 바쁘고 이리저리 치이면서도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느낌이었다면 나라마치는 조용하고 탁 트인 길거리를 여유롭게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산책하듯 골목길 사이사이를 걷다 보면 일본식 전통 주택이 눈에 띈다. 디저트 카페나 식당도 모두 목조 건물이고 처마가 달려있었다. 그리고 그 처마 끝에는 ‘미가와리자루’라는 붉은 천으로 만든 장식이 걸려있었다. 이것은 ‘경신(육십갑자의 57번째)’의 사자인 원숭이를 형상으로 만든 부적이다. 나쁜 액을 대신 받아준다고 해 ‘미가와리자루(대신 받아주는 원숭이)’라고 불린다. 제주도엔 돌하르방이 있듯 일본엔 미가와리자루가 있었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었지만 그 마음은 똑같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푸른 잎과 함께 어우러져 평온함을 주는 고후쿠지 5층 탑.

◇ 사슴의 나라, 고후쿠지 신사

나라마치를 구경한 후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고후쿠지 신사로 이동했다. 고후쿠지 신사는 긴데쓰 나라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어 찾아가기 쉽다. 이곳은 710년 후지와라 후히토가 아스카에서 헤이조쿄로 우마야사카데라 절을 이전한 것이다. 고후쿠지 5층 탑은 일본에서 2번째로 높은 탑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5층 탑의 왼쪽에는 동금당이 자리하고 있다. 원래 3개의 당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불타 사라지고 동금당만 남았다고 한다. 사슴과 5층 탑, 동금당과의 포토존을 지나면 남원당이 있다. 사찰, 사원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는 일본의 문화가 드러나는 곳이었다.

고후쿠지 5층 탑과 동금당, 남원당, 북엔당 등의 사찰과 목탑은 주변의 경치와 조화를 이루었다. 푸른 나뭇잎들과 함께 찍은 사진은 그 웅장함과 고고함을 한층 더 깊게 만들었다. 특히 사찰에서 향을 피며 기도하고 종을 울리는 사람들의 분위기 덕분에 그 문화와 기운을 얻어올 수 있었다.

◇ 여행을 마친 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에게 남은 것은 ‘경험’과 ‘책임감’이었다. 제주도에서 평생을 살며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해낸 적이 없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으로 시작하고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경비를 마련하고, 일정을 짜고, 때에 따라 달라지는 상황에 맞춰 조절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선택은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실수의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다는 것과 해결 또한 내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던 때도 있었다.

도착한 날은 현실의 벽에 부딪힌 유리잔처럼 조각조각 부서지기도 했다. 첫 여행을 준비 없이 출발한 탓인지 그저 멍 때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이도 도움을 주거나 대신 해주지 않는다. 언제까지 누군가의 도움으로 살아갈 것인가.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 보자. 이것이 나의 동기부여였다.

여행을 마치고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고생한 순간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사람을 들여다보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생각할 수 있던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여행을 사치와 허영이라고 하겠지만 누군가는 여행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한다. 첫 여행을 떠나려는 누군가 나에게 여행은 어떤 것인지 묻는다면 이전의 일상 생활에서 봤던 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답하겠다.

변연주 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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