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본섬의 유일한 유인등대
역사를 뒤로하고 무인등대로

제주 산지등대의 모습.

‘진도 가학 포구에서 5인승 쌔내기를 탔다. (중략) 성에 낀 창가에 파도소리 부서질 때마다 안개꽃 흐드러지고 우리는 파도소리 데피며 밤새 푸른 소주를 마셨다. 비바람 치는 밤 뜨거울 때마다 비에 젖어간 등대지기. 고도에 부릅튼 등대의 눈시울 닦아주며 마음 쓸어내렸을 섬지기 35년, 이 섬과 작별하는 마지막날 소주잔만큼. 이제 떠나고 나면 무인도 아닌 무인등대로 남을 가사도 등대’. (중략). 시집 ‘포구의 아침’중 ‘그리운 가사’도 등대. 이 시는 평생을 등대와 함께 했던 강용정씨가 등대지기로 살아온 마지막 기억을 살려 작성된 내용이다.

4면이 바다로 이뤄진 섬, 제주. 비행기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배를 이용해 제주를 찾았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제주로 인도한 것은 등대와 등대지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선원들에게 등대의 빛은 희망이었다.

산지등대에서 바라본 제주항의 모습.

◇제주 본섬의 마지막 유인등대인 산지등대

3월의 어느날 산지등대를 방문했다. 바람은 거세게 불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제주항의 모습과 사라봉, 별도봉 주변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에 관광객의 산책코스, 야경을 감상하는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날씨가 좋다면 보길도, 청산도까지 모두 볼 수 있다고 한다. 작년까지는 해양수산부 부산지방해야수산청 홈페이지를 통해 접수하면 등대체험숙소를 이용할 수도 있었다.

현재 제주도에는 4개의 유인등대가 운영된다. 우도등대, 마라도, 추자도, 그리고 사라봉에 위치한 산지등대다. 1906년 3월 처음으로 점등한 우도등대, 1915년 3월 불을 밝힌 마라도 등대, 1980년 설립된 추자도 등대, 본섬을 지키는 산지등대까지 4개의 등대는 제주의 바다를 밝히고 있다.

그 중 제주도 본섬을 지키는 유인등대는 산지등대가 유일하다. 유인등대란 등대 직원이 상주해 광파, 음파, 전파 표지 등 복합 업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이 4개의 등대에는 등대의 경보등과 신호장치를 조착해 선박의 안전항해를 돕는 등대지기가 근무하고 있다.

◇산지등대, 이제는 무인등대로

1916년 10월 무인등대로 설립된 산지등대는 1917년 유인등대로 변경된다. 이후 1999년에 기존 산지 등대 옆에 새로운 산지등대 건물이 세워졌고 현재까지 제주의 관문인 제주항을 지키는 등대로 운영 중이다.

하지만 더 이상 산지등대에서 등대지기를 볼 수 없게 된다. 그동안 공무원 2~3명이 교대근무를 통해 운영돼 왔지만, 해양수산부가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한 원격제어시스템을 도입해 무인화를 추진한 것이다.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제주해양수산관리단 관계자는 “1917년부터 관리인이 상주해 직접 불을 밝혔던 산지등대가 올해 하반기부터 무인등대로 전환된다”며 “유인등대 관리체계 개선연구용역에 따라 2015년 12월 산지등대 무인화가 결정됐고 올해 예산 10억을 들여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변에 해양수산관리단이 위치해 있어 무인등대로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기술의 발전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낳는다. 일출과 일몰의 시간에 맞춰 직접 등대의 불을 꺼고 켰던 등대지기. 제주의 바다를 지켰던건 등대의 빛 외에도 안전하게 항해할 수 있기를 바랬던 등대지기의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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