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외침 속에 더이상 유보할 수만은 없는 일

4ㆍ3특별법 개정촉구결의대회.

“완전한 해결이 이념을 극복하고 국민 통합으로 가는 길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월 3일 자신의 SNS에 제주 4ㆍ3은 여전히 봄 햇살 아래 서있기 부끄럽게 한다며 더딘 발걸음에 마음이 무겁다는 글을 작성했다.

제주 4ㆍ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진실의 은폐와 망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직시와 기억의 바탕 위에서 비로소 이뤄진다며 우리 사회에서 과거를 둘러싸고 빚어지는 갈등을 치유하는 데도 제주는 좋은 거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는 4ㆍ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역사의 소명으로 받아들였으며 제주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ㆍ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 희생자 유해를 발굴하고, 실종자를 확인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제주4ㆍ3에 대한 관심은 과거보다 뜨겁다. 하지만 여전히 4ㆍ3특별법 제정의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제주도민의 간절한 바람을 취재했다.  

<편집자 주>

◇제주 4ㆍ3의 배경

4ㆍ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무력 진압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7년 3ㆍ1절 기념식에서 기마경관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이는 일이 발생한다.

아이를 친 기마경찰은 사죄는커녕 되돌아가려고 하자 이를 본 일부 군중들은  경찰을 쫒기 시작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경찰 측은 습격으로 오인했고 군중들을 향해 발포했다.

이날 발포로 인해 사건과 무관한 어린아이와 민간인들을 포함 총 6명의 사망자와 8명의 중상자가 발생한다. 이날 이후 제주도민들은 발포사건에 대한 경찰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3ㆍ10 총파업에 돌입했다.

공무원, 노동자, 학생, 일부경찰을 포함해 도내 166개의 기관과 단체가 민간합동 총파업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정과 경찰 측은 도민의 의견을 외면하며 3ㆍ1사건을 남로당(남조선 노동당)에 선동당한 좌익세력의 폭동이라며 포고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제주도민들을 전면 ‘빨갱이’로 간주, 서북청년단의 무자비한 대학살이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과 일부 도민들로 이뤄진 350여명의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중지, 통일정부 수립, 단독선거 반대를 촉구하며 무장투쟁을 시작했다.

이에 대응해 이승만과 미군정은 군대를 동원해 해안선 5km 이외의 산악지대 통행을 금한다는 포고령과 이를 위반한 자는 좌익 무장세력 즉, 폭도로 간주해 사살토록 한다고 입장을 밝히며 ‘금족령’을 선포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뒤늦게 접한 산간 주민들은 피신하지 못하고 학살당했다. 이 과정에서 공식사망자가 1만4000명에 달했고 가늠하기 어려운 사망자까지 포함한다면 희생자는 3만명에 달한다.

◇현재 4ㆍ3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제주 4ㆍ3이 발생한지 어느덧 71년이 지났다. 제주 4ㆍ3중앙위원회 희생자 심의결과에 따르면 제주 4ㆍ3희생자와 유족을 포함 5081명이 추가 결정됐다. 4월 1일 기준 7만8741명으로 집계되고 있지만 여전히 억울함을 벗지 못하고 있는 희생자들도 잇다른다. 지난 한해 동안 제6차 제주4ㆍ3희생자 및 유족 추가신고를 진행한 결과 2만1392명이 집계됐다. 이중 4ㆍ3중앙위에서 심의 받지 못한 인원은 1만6311명에 달한다.

전국 곳곳으로 수형살이를 한 억울한 희생자들은 집계자료에 포함되지 않았고 이들을 포함하면 수천 명이다. 하지만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4ㆍ3특별법 개정은 더디기만 하다.

국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거쳐 특별법 개정안을 논의된 바 있지만 당락을 짓지 못해 4ㆍ3유족들과 희생자들의 분통은 더욱 확산되고 있다.

◇4ㆍ3특별법 개정을 위한 범도민 결의대회

4월 2일 오후 4시 제주시청에서는 4ㆍ3특별법 개정촉구를 요구하는 도민결의대회가 열렸다.

관덕정을 시작으로 행진을 한 제주도내 4개 대학 학생회는 제주 4ㆍ3특별법 개정촉구 범도민 결의대회에 참석했다.

김남이(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 김덕용 (제주국제대학교 총학생회장), 오정헌(제주관광대학교 총학생회장), 고영민(제주한라대학교 총학생회장)씨는 각 4개 대학을 대표해 자리했다.

김남이 제주대학교 총학생회장은 “아직도 우리 할머니께서는 4ㆍ3의 기억들을 가슴에 안고 살아간다. 그때의 이야기를 꺼낼 때 마다 눈물을 흘리신다. 4ㆍ3특별법이 개정될 때가지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자는 “호적에 올리지 못한 아버지 이름을 되찾게 해달라. 70년이 지난 지금 배상은 원칙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것이 과거사 문제 해결의 기본이다. 반복하지만 과거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바이다. 역사의 명령이다. 4ㆍ3특별법 개정하라”고 말했다.

이어 박건도(제주청년협동조합 이사장, 제주 4ㆍ3 71주년 위원회의 공동대표)씨는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부끄럽게도 4ㆍ3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4ㆍ3은 과거에 많은 이들이 무참히 죽고 희생당한 사건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4ㆍ3은 과거의 종료된 사건이 아닌 현재까지 이어져오는 우리의 일이다. 앞으로 나는 미래세대로서 4ㆍ3이 잊혀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4ㆍ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4ㆍ3특별법개정이 중요하지만 이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와 정부에 요구한다. 4ㆍ3희생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4ㆍ3특별법 개정안 반드시 통과시키길 바란다” 고 덧붙였다.

4ㆍ3희생자 추념식 전야제 행사 부스.

◇71주년 제주 4ㆍ3희생자 추념식 전야제

4월 2일 오후 6시부터는 제주시청 앞 광장에서 추념식 전야제가 진행됐다. 인형만들기, 제2공항 반대 서명, 자연 먹거리등 각각의 단체들이 모여 4ㆍ3 71주년을 추념하는 부스를 설치했다.

김동현(제주대 강사ㆍ문화평론가)씨의 사회로 도민들은 다함께 묵념을 했다. 이날 제주 4ㆍ3 여순특별법 개정촉구로 4개의 시,도의회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4ㆍ3특별위원여수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 전라남도의회 여수ㆍ순천 10ㆍ19사건 특별위원회, 순천시의회 여순사건특별위원회는 추념식 전야제에서 4ㆍ3특별법 개정과 여순사건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4ㆍ3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4ㆍ3특별법 개정과 여순사건 유족과 희생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여순사건 특별법을 시급히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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