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움직이는 외교에 시동을 걸어
우리 외교의 능력을 넓힐 수 있기를 소망

이 기 석

영어영문학과 교수

조미수호조약을 맺은 조선은 1889년 워싱턴 DC의 한쪽 곁에 주미공사관을 개설한다. 정확히 130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시작된 조선 말기의 대미 외교관계는 1905년 을사조약을 끝으로 비운의 종말을 맞게 된다. 당시 2만 5000불을 주고 어렵사리 매입했던 대한제국 대미 외교의 상징이었던 이 건물이 일본 손에 단돈 5불로 넘겨졌다니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랬던 그 슬픈 역사의 현장이 최근년에 350만 불을 주고 재매입돼 2018년 5월 다시 개관됐다. 백악관에서 북동쪽 로건서클의 한 모퉁이에 서 있는 이 공관은 붉은 벽돌이 돋보이는 3층짜리 빅토리아 양식으로서 현재 태극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이 건물의 수난사를 돌이켜 보면서 확실한 것은 한 나라가 진정한 독립국이 되지 못할 경우 그 결과로 멀쩡했던 외교권이 박탈당하고 종국에는 제국주의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거꾸로도 마찬가지이다. 즉 외교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진정한 독립 국가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 1905년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할 바로 그때 주미 대한제국공사는 외교적으로 뭘 하고 있었는지 묻고 싶은 심정이다. 러일전쟁 후 이 양국 사이의 밀약에서 일본의 조선 강탈에 대한 미국의 묵인과, 이어지는 제2차 영일동맹에서 영국의 이에 대한 양해와 그리고 곧바로 포츠머스 조약에서 이에 대한 러시아의 보장 등 숨가쁘게 조선을 조여오고 있던 그 시절 그 순간 대한제국의 외교전략은 무엇이었을까. 

당시 독립신문의 주요 사설을 보게 되면 대한제국은 조선의 문제를 주변의 주요 강대국들에게 복수로 다양하게 관여시킴으로써 어느 일방의 국가가 조선을 먹지 못하도록 하는 매우 수동적 접근법을 쓴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고종은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조선 외교의 바이블로 삼았던 것 같다. 이로써 미국을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지 않으려는 대인배의 나라’로, 심지어는 ‘형님 나라’로까지 삼고 풍전등화와 같은 조선의 운명을 미국에 맡겨버리는 결정적으로 순진한 우를 범하게 된다.

평화와 비핵화의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작금의 한반도 상황도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여기서의 관건은 한반도의 평화와 비핵화, 더 나아가 통일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남과 북의 두 나라가 핵심 축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나머지 주변 강국들은 모두가 주변 축으로서의 보조역할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즉 이 문제에서 북미회담이 핵심축이 되고 마치도 남북회담이나 한미회담은 이에 대한 종속변수 관계로만 설정된다면 잘못된 플레이라고 본다. 특히 한국의 과도한 대미 의존은 문제 중의 문제로 보여진다. 트럼프의 입만 바라보고 미국의 지시만을 받아쓰는 식으로는 한반도 문제는 요원해 보인다. 남과 북은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로 가는 길목에서 그 중심축의 역할을 보다 더 확고히 해야 할 듯하다.  예를 들어 개성공단 재가동의 문제와 금강산 관광이라는 우리 자체의 문제까지도 트럼프의 재가를 얻을 일이 아니라 반대로 남과 북 모두가 원하는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함으로써 비핵화로 가는 긍정적 동력으로 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바로 이때 한국의 대미외교가 제대로 움직여야 한다. 이제 미국을 움직이게 하는 외교에 시동을 걸 때이다. 사드 배치에 따른 문제, 미국 무기의 구매 문제, 주한 미군 분담금 문제 같은 굵직한 패를 들고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단계로까지 우리 외교가 그 능력과 지경을 넓힐 수 있어야 한다. 바야흐로 지금은 전후 70년 만에 처음으로 찾아온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결정적인 시기이다. 홍해까지 진출해 나온 히브리 백성들이 이제는 건너야 할 때였던 것처럼 우리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도강을 하자. 여기서 다시금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은 답이 아니다. 이것이 지금도 펄럭이고 있는 대한제국공관 태극기의 교훈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