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정말 아무거나 입을까? 제주 시골 할머니

김경화(정치외교학과 11학번) 작가

새로움(new)과 복고(retro)를 합친 신조어 ‘뉴트로’(newtro)가 대세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다. ‘패션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듯 최근엔 복고 패션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가운데 제주 시골 할머니 패션에 꽂힌 이들이 있다. <제주 시골 할머니 패션>을 발간한 김경화(정치외교학과 11학번) 씨이다. 1910~40년대에 태어나 이제는 ‘할머니’라 불리는 제주지역 여성 43명의 패션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펴냈다.

<제주 시골 할머니 패션> 책 표지


시골에 사는 할머니의 옷차림새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할머니들은 정말 화려한 문양을 좋아하는가?’, ‘단색 한복을 입고 자란 할머니 세대는 여전히 단색을 좋아할까?’, ‘일흔을 넘긴 제주 시골 할머니들의 패션 문화는 30년 후에도 계속 존재할까?’, ‘제주 시골 할머니 패션은 유일한 것일까?’ 패션은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뒤집어 할머니의 취향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마을에 모여 사는 할머니들이 서로 공유하는 패션 문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난해 8월부터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들을 만났다. 제주지역 동서남북 마을 한 곳씩 들러 마흔세 명의 할머니들을 취재했다.

녹록치 않은 과정이었다. 할머니들을 만날수록 일이 점점 커졌다. 논문을 읽고 자료를 모으며 전문가들을 찾아다녔다. 할머니 세대가 살아온 시대 배경 속에서 나타난 다양한 옷과 할머니가 아끼는 물건들, 할머니 옷을 입는 젊은 사람들, 제주 한림에 최초로 문을 연 양잠점 이야기까지 폭 넓은 이야기를 담느라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됐다. 다행히 고등학교 때부터 관심사가 비슷했던 친구 신현아씨가 힘을 보태준 덕분에 기획부터 취재, 삽화와 책 편집까지 소화할 수 있었다. 시골에 사는 할머니의 옷차림새에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할머니들은 정말 화려한 문양을 좋아하는가?’, ‘단색 한복을 입고 자란 할머니 세대는 여전히 단색을 좋아할까?’, ‘일흔을 넘긴 제주 시골 할머니들의 패션 문화는 30년 후에도 계속 존재할까?’, ‘제주 시골 할머니 패션은 유일한 것일까?’ 패션은 젊은이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을 뒤집어 할머니의 취향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마을에 모여 사는 할머니들이 서로 공유하는 패션 문화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지난해 8월부터 할머니와 할머니 친구들을 만났다. 제주지역 동서남북 마을 한 곳씩 들러 마흔세 명의 할머니들을 취재했다. 

두 사람 모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었던 탓에 당초 계획보다 책을 내기까지 시간이 더욱 걸렸다. 언젠가 공무원이 되더라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병행하고 싶다는 마음에 시간을 쪼갰다. 9개월에 걸쳐 풀 컬러로 인쇄한 333쪽짜리 단행본은 지난 3~4월 제1회 제주 산방산 아트북페어와 탐라도서관이 개최한 ‘제주 북페어 2019’에 첫 선을 보였다. 할머니들은 물론 독자들의 반응도 좋아 ‘다른 길을 가더라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용기도 조금은 얻었단다. 

다음은 김경화 씨와의 인터뷰 전문. 

▶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됐나

통상적으로 할머니는 ‘느리다’, 패션은 ‘빠르다’는 인식이 있다. 이질적인 두 가지가 만나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궁금했다. ‘시골’, ‘할머니’, ‘패션’이라는 키워드를 추리고 ‘할머니 개인의 패션을 담자’는 구상을 가졌다. 2018년 제주청년센터 동아리지원사업으로 도움을 받아서 책까지 나오게 됐다.▶어떻게 이 책을 내게 됐나

▶ 기획부터 출간까지, 작업 과정이 꽤 길었을 것 같다.

지난해 8월에 시작해서 9월 초까지 한 달 만에 완성할 생각이었다. 처음엔 타블로이드 형태의 신문 정도로 생각했다. 마흔세 분의 할머니 인터뷰를 하니 일이 커졌다. 할머니들을 만날수록 필요한 내용이 추가돼서 준비 과정도 길어졌다. 책의 판형만 8번 엎어져서 나오기까지 대대적인 프로젝트가 됐다. 

▶할머니 섭외부터 인터뷰, 사진 촬영, 또 책 편집과 인쇄까지 만만치 않았을 텐데. 뭐가 가장 어려웠나?

섭외와 글쓰기가 가장 어려웠다. 생판 모르는 분들을 찍으려니 너무 막막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일수도 있는데 사진 찍는 데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다.개별적으로 만나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서 경로당으로 눈을 돌렸다. 주변에 수소문해서 간 곳이 사평마을과 예래동이다. 경로당의 리더 어르신들에게 말씀드리니 흔쾌히 참여해주셨다. 

▶잊을 수 없는 할머니를 소개해 달라.

예래동의 대장 할머니인 현병렬(94) 할머니이다. 파란 망사양말에 금빛 슬리퍼에 갈천으로 만든 스카프 등 예사롭지 않은 패션 감각을 갖고 계신 분이다. 관덕정에 장이 서던 때의 이야기부터 제주에 옷감이 들어온 역사나 칠성통에서 불파마 했던 이야기를 해줘서 기억에 많이 남았다. 

▶할머니들을 만나며 느낀 것이 있다면?

그들의 삶을 다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그래도 옷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할머니가 지내온 삶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옛날에 일할 때 옷을 뭐 입었냐고 하면 물질할 때의 이야기를 하고, 밭일할 때의 이야기가 나온다.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고생에 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죽게 고생했다’.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할머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던 시간이었다. 하나 더 있다면 할머니들이 가르쳐준 것이라기보다 할머니들을 만나러 갈 때면 늘 끼니는 챙겼는지, 뭐라도 하나씩 챙겨줬다. 갈 때마다 국수를 얻어먹었다. 나도 누군가를 만날 때 베풀고 챙겨야겠다는 태도를 배웠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책을 만든 거라 더 힘들었을 텐데, 어떤 것이 동기부여가 됐나?

내가 하고 싶은 분야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었다. 이걸 ‘공무원이 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완성한 경험이 있으면 되고 나서도 병행하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 할 때마다 ‘순진한 생각’이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학교에 다닐 때에도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영상에 빠져있던 때도 있었다. 

▶책을 본 할머니들도 계신지? 어떤 반응이시던가?

책을 드리면 좋을 텐데 28000원이니 마흔세 분께 모두 드리기가 부담이어서 할머니들을 찍은 사진을 자녀들 몫까지 엽서로 만들어서 드렸다. 책을 읽으면서 다른 동네 할머니들은 어떤지 꼭 들춰보신다는 것이다. 고맙다는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주셨다. 할머니께 사진 나눠드릴 때 옆에서 영정사진이냐는 이야기를 해서 무척 당황했다. 할머니들에게 사진이라고 하면 영정사진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인가, 그런 생각도 했다. 사진 활용 동의서를 자녀들에게 받기도 했는데 오히려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최근 두 차례의 북페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기억에 남는 피드백은?

상반된 반응에 조금 놀랐다. 하나는 긍정적인 것인데 ‘계속 이 작업을 할 거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고. 40대들은 ‘진짜 우리 엄마다’ 이런 반응들이 와 닿았다. 중년 남성분이 ‘이건 패션이 아니다’라고 무례하게 말하고 간 사람도 있다. ‘촌스러운 패션이네’ 이런 반응도 있었다. 북페어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전업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얻었다. 

▶최근의 고민을 무엇인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하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게 나에게 가장 큰 압박이었다. 결혼을 하려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하고 빨리되어야겠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 생각을 내려놓으니 ‘공무원은 1년 늦게 되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아직 부모님께선 책 나온 것까지는 모르신다. 공무원 시험도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다. 선택해야 하는 때가 곧 오겠지. 일단 찍어둔 책은 재고가 별로 남지 않았다. 소셜 크라우드 펀딩으로 판형도 줄이고 분권화해서 선보이려고 한다. 5월 중에 달리도서관에서 저자와의 만남도 할 예정이고, 제주시청 인근 커피숍에서 전시도 준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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