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우리나라에서 수백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였다. 이 열풍에 힘입어 ‘정의’에 대한 관심과 함께 사회문제 해결에 있어서 ‘정의’가 최고의 기준점으로 떠올랐다. ‘정의 열풍’의 근원에는 우리 사회에 정의가 없기 때문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까지 있었다.

지역사회의 갈등 이슈인 제2공항 건설 문제 역시 “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또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가운데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해 저마다 주장하는 정의의 기준과 생각이 다르다. 그 갈등 속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에 대해 혼란을 느끼는 도민들이 많다.

그래서 보다 근원적인 기준점으로 하버드대 존 롤스 교수는 자신의 정의론에서 정의의 원칙들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통해서만 선택할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ㆍ계층적 지위를 모르며, 자기가 어떤 소질이나 능력, 재능, 지위, 가치관, 체력 등을 타고났는지를 모르는 상황, 즉 원초적 입장에서만 적합한 합의가 도출될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말하면 처지를 바꿔 생각해보자는 ‘역지사지’정신이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임마누엘 칸트의 의무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의무론은 행위의 의지나 동기를 중시하고 결과보다는 주어진 원칙을 따를 것을 강조한다. 칸트의 도덕적 이상은 인간의 순수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칸트는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어 무조건적으로 마땅히 해야 할 정언명령에 의해 ‘보편적 법칙에 부합하게 행동하라’를 제시했다.

하지만 칸트는 보편적 법칙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롤스는 그 법칙의 내용을 채워보려고 시도했다. 처음으로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모인 원시적 인간들이 자신의 능력과 결함들을 전혀 모르는 ‘무지의 베일’ 뒤에서 어떤 정책과 제도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을까를 상상해 보았다. 그 가상에서 롤스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성공의 욕심보다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이 더 강하기 때문에 모두가 위험을 피하고자 소위 최약자-최혜분배원리에 동의할 것이라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어떤 정책을 정할 때는 가장 손해 보는 약자의 처지를 생각하고, 그들의 최대한의 이익이 먼저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누구나 동의하고 합의할 수 있는 원칙, 즉 정의의 원칙에 의해 움직이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제일 불리한 처지인 사람도 받아들일 정도의 방안이라면 다수를 위한 정책과 제도로 옮겨도 무리가 없다. 제주도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도 참고해야 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