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계기 없이‘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주변과 함께 가는 방법을 찾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

≫ 다른 길, 다른 삶을 묻는다   <2> 박경호 제주사람 대표

박경호 제주사람 대표가 인터뷰하고 있다.

대입 수능 점수에 맞춰 선택한 전공, 그렇게 대학에 들어와 학생회와 동아리 활동, 학점 관리까지 별 다를 것 없던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등록한 HRA(Human Resources Academy)가 터닝 포인트가 됐다. 전공 수업이 아닌 다른 학과의 수업을 찾아 듣고 읽어본 적 없는 책을 읽고,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른 삶의 방식’이 있겠다는 걸 깨달았다. 관성에서 한 걸음씩 벗어나면서 추구하는 가치와 기준이 달라지고 시야가 트이고 진로도 바뀌었다. 토목공학과 05학번인 박경호 대표(34)의 이야기다. 방송국 FD와 막내작가, 공연기획과 프리랜서의 길에 이르기까지 가족과 주변의 우려도 있었다. 부모님이 취직을 권유하자 “서른 살까지 해볼게요”라고 설득하며 시간을 벌었다.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서른 살 무렵부터 하는 일이 차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책이 아닌 사람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도서관’ 프로젝트를 계기로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플랫폼을 지향해왔다.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아닌 사람들의 ‘참여’로 생겨나는 가치에 눈을 뜬 것이다. 반응이  관심을 받으면서 내심 걱정하던 부모님도 점차 그의 진로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제주의 청년들과 커뮤니티를 이루고, 공동체를 꾸리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펼치면서 지역사회에서 활동 반경을 넓혀갔다.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도 달라졌다. 금전적인 이득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에 눈을 떴다. 그렇게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매진하면서 4~5년 앞만 보고 내달리다 보니 숨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자신에 대해 파악해야 그 영향력을 주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서 최근에는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 새로운 창업도 준비 중이다. 자신처럼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 비즈니스이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 달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몇 년 해오다가 최근에는 프리랜서 커뮤니티 비즈니스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창업 준비와 더불어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아직은 말 그대로 준비 단계이다.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개인 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예전엔 무턱대고 ‘이 일이 좋아’, ‘이 일을 해야겠어’ 마음이 들면 곧바로 돌진했다. 그 간 해온 일을 정비를 하고 어떤 것들을 해왔는지 그것을 토대로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시기이다.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서게 되었나.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마음으로 학교에 다니는 중이던 2011년에 HRA(Human Resources Academy)를 했다. 이른바 ‘탈(脫)토목’, 전공이 아닌 일을 해본 첫 시도였다. 그 후에 방송국 FD와 막내작가 일도 해보고, 공연 기획도 해봤다. 그러면서 사람도서관 프로젝트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런 선택들이 경험으로 쌓이면서 기준을 정했다. 색다른 것들을 하려는 용기도 생겼다. 예전엔 금전적인 이득이 중요했는데, 요새는 내가 생각하는 가치가 중요해졌다. 


▶일을 하면서 고민이 될 때 가장 지침으로 삼는 것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일을 선택할 때. 제안이 올 때도 있고 할 때도 있다. 이게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지,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고민하고 배울 수 있는지,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일을 주로 해왔다. 그렇다 보니 참여라는 가치가 중요하다. 참가자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열린 기획’을 추구하려고 한다. 대체로 강연에서는 이게 정답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스스로에게 맞는 해답을 찾는 과정이 중요하다. 서로 이야기 나누는 장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나아간 개념을 ‘언컨퍼런스’(Unconference)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일을 해오고 있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연결의 고리를 찾는 것을 보면서 참여가 중요하다는 걸 느끼고 있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수능 점수에 맞춰서 가장 잘 갈 수 있는 곳이 토목공학과였다. 대학 생활 동안 별 다른 경험은 없었다, 학생회도 해보고 동아리 활동도 해보고 학업에 집중할 때도 있었다. HRA가 터닝 포인트였다. 기존에는 학점을 채우기 위해서 수업을 이수하고, 점수를 잘 받으려고 했다면  다른 분야를 경험하면서 세상에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잘하고 싶은 것이 생기다 보니 그것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 8개 학과의 전공수업, 교양수업 등을 찾아 들었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관심 영역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아직 졸업은 하지 못했지만 곧 하려고 한다. 대학원 진학도 고민하고 있다. 


▶진로를 틀면서 가족이나 주변 반응은 어떤가. 

부모님도 좋아하면서도 한편 불안해한다. 내 가치관이 달라지면서 소원해진 친구들도 있다. 그들을 설득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주변이 변하지 않는데 다른 것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긋난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가치를 설명하는 것도 내 역할이라고 본다. 아버지가 보수적이다. 20대 후반에 부모님이 취업을 제안할 때 30세까지 내가 해보고 싶은 걸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다행하게도 서른 살 즈음에 사람도서관이 관심을 끌었다. 항상 힘들 때 부모님께 연락드리면 응원도 해주시기도 하고 가끔은 정처 없이 방황할 때는 잡아주는 부분도 있다. ‘내가 뭔가 하려고 하면 눈총이 있을 거야’ 겁먹는 건 상상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과 진지하게 이야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애착이 가는 기획 두가지를 소개해 달라.

첫 번째는 2015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 크래비터 사람도서관이다. 일을 시작하는 단계에서는 어느 정도 기획이 잡혀있는 것들을 수행하는 정도였는데 시야를 넓혀준 프로젝트이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을 찾아가는 경험도 드물었는데 다양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만나러 다니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대화를 나누면서 조심해야 할 부분, 사전에 확인해야 할 부분들을 깨달았다. ‘밋업’(Meet Up)을 주도하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두 번째는 2016, 2017, 2018년 인스파이어드@제주이다. 인스파이어드는 문화, 예술, IT 등 사회 전반에서 창조적 혁신가로 활동하는 100인을 초청해 자유로운 네트워킹, 지식 교류, 토론 등의 경험을 하는 행사다. 해마다 제주에서 열리고 있는데 지역에서 함께했던 사람으로서 사람을 만났던 게 큰 경험이었다. 서로 다른 분야이지만 공통적 주제를 뽑아내고 공통의 의제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였다. 개인적으로 멋있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서 2박3일을 보냈다는 경험 자체가 좋았다. 일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열린 기획’인 프로그램이다. 

이외에도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가장하고 싶은 것은 책을 쓰는 일이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에게 찾아낸 가치관 같은 걸 에세이 형식으로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인터넷언론인 제주의소리에 <박경호의 제주 사람책>을 잠깐 연재했던 것을 동력으로 삼아서 앞으로 어떻게 가공해나갈지 고민하고 있다. 적게 분량이어도 글을 쓰는 연습을 해보고 있다. 
 

▶최근 가장 꽂혀있는 것, 집중하고 있는 것, 앞으로의 계획은?

‘나에게 집중하기’다. 프리랜서로 사업도 해오면서 청년으로서 사회적 가치, 공동체적 가치를 지향하는 활동도 4~5년 정도 해왔다. 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심신이 많이 지쳤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나에게 집중하는 것에 몰두하고 있다. 해온 일들도 정리하면서 내 몸에 맞는 것, 내게 도움이 되는 것을 추려나가는 시간이다. 수영이나 테니스 같은 운동도 하고, 책을 필사하는 시간도 가지고 있다. 내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쓰고 또 좋은 사람들과 같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주변과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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