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저하지 말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일방적 수용 아닌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보기로

손명철 지리교육전공 교수

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어 강의실에서 새로운 학생들과 만나고 있다. 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지 꽤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나는 수업 첫 시간에 나의 수업 모토 두 가지를 수강생들에게 알려준다. 이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나의 수업 모토를 강조하는 것은 여전히 대학의 수업 분위기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 논의 중인 주제에 대해 나름대로 매우 독창적이거나 논의 전개에 도움이 되는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강의 첫 시간에 배포하는 교수계획서에 매주 논의할 주제와 참고문헌을 제시해주고, 해당 수업 전에 제시된 참고문헌을 읽고 저자의 핵심논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후 수강생 자신의 비판적 견해를 덧붙여 간단한 리포트를 작성하도록 요구한다.

수업 시간에는 주제 선정 이유와 의의에 대해 내가 먼저 짧게 설명을 하고 수강생 각자가 정리해온 핵심논지와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도록 권유한다. 그러면 대체로 수강생들은 발표하기를 주저하거나 발표를 하더라도 저자의 핵심논지에 대해서만 발표하고 자신의 견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처음엔 수강생들이 자신만의 비판적 견해가 없거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기엔 뭔가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해서 발표를 주저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수업이 끝난 후 수강생들이 제출한 리포트를 읽어보면 자신만의 독특하고 의미 있는 견해가 많이 담겨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만 혼자 읽어보고 덮어두기엔 너무 아까운 내용들도 종종 발견된다. 이런 아이디어와 견해들을 수업 시간에 발표하면 다른 수강생들이 그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가는데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논의 내용이 다양해지고 수업 분위기도 훨씬 활기 있게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면 왜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수업 시간에 잘 이야기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발표하면 뭔가 잘난 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고, 그러면 주위 동료들로부터 질시를 받거나 심하면 왕따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수업 첫 시간마다 서로 ‘잘난 체하기’, 그리고 그것을 서로 ‘기꺼이 수용하고 칭찬하고 박수쳐주기’를 강조한다. 

두 번째 모토는 ‘선배 맞먹기’이다. 나는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인간관계에 얽매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연령이나 직책, 직급이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너무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연령이 낮거나 직급이 낮은 사람은 윗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사나 감정표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고, 대개는 윗사람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잠자코 듣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기본적으로 오랜 기간 한국인의 의식과 생활을 지배해온 유교적 전통과 군사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나는 강의 첫 시간에 적어도 수업 시간만이라도 선배 의견에 기죽거나 무조건 추종하지 말자고 권고한다. 자신의 생각은 뭔가 부족하고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해 이야기하기를 회피할 것이 아니라, 나는 그 주제에 대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고 나는 세상을 이렇게 본다고 당당하게 말하도록 분위기를 유도한다. 그런데 강의실에서의 선배란 단순히 상대적으로 학번이 높거나 나이가 많은 학생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대개 강의실에서 가장 학번이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바로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 즉 나(손명철)이며 더 나아가서는 수강생들이 함께 읽고 토론하는 텍스트를 집필한 저자일 수도 있고, 논의와 관련된 저명한 학자나 성인(聖人)일 수도 있다. 이들의 주장이나 견해에 대해 일방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보다는 그들의 주장을 경청하고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봄으로써 자신의 안목과 의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과정이 곧 대학에서의 공부라고 일러준다. 이것이 바로 ‘선배 맞먹기’의 참다운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학기에도 나의 수업 모토가 강의실에서 조금씩이라도 실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도 나는 나의 수업 모토를 소개할 것이다. 징검다리를 만들기 위해 깊은 강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 던지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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