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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왕, 광해 재평가 받다광해의 유배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 될 것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계기로 활용됐으면

>> 광해 제주에 유배오다

제주민속자연사 박물관에서 8월 20일부터 11월 20일까지 ’광해, 제주에 유배오다’ 기획전을 전시한다.

500년이 넘는 조선시대에는 27명의 왕이 있었다. 가장 존경을 받는 세종부터 폭군으로 평가되는 연산군까지 그 평가가 제각기 다르다.

그중 광해군은 조선왕조 15대 임금으로, 긍정과 부정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그 족적이 뚜렷한 군왕이다. 대동법 시행을 대표로 ‘동의보감’과 역사서 편찬 등 백성의 건강한 삶까지 세심하게 살핀 문무를 겸한 절대 군주로 전해지기도 한다. 양대 왜란 이후 초당파적 정치개혁과 부국강병책을 겸한 중립·실리외교 정책으로 국가 안위를 튼튼히 한 왕으로도 평가받는다. 그렇기에 비록 내치(內治)는 광인의 폭정이었지만, 외치(外治)는 뛰어났다는 평이 많다.

광해군을 다루는 기획전 ‘광해, 제주에 유배 오다’가 8월 20일 제주 민속자연사 박물관에서 개최됐다. 박물관 개관 35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기획전은 오는 11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제주에 유배된 광해군을 재조명하는 기획전으로 그의 제주 유배생활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또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광해 영화 무료 상영(9월~10월 총 4회), 강연회(9월, 10월 총 2회)와 광해 아동극(10월 총 2회)을 선보일 계획이다. 4개의 테마로 나눠 구성된 이번 전시회는 광해군의 일생을 고문서, 의복, 일러스트, 사진 등 다양한 자료를 이용해 나타낸다.

광해군은 1575년 선조와 후궁 공빈 김 씨 사이에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광해군은 서자였지만 어릴 적부터 왕자들 가운데에서도 영특한 모습을 보여 부왕 선조에게 사랑을 받았다. 1592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왕세자가 됐다. 의주로 피신한 선조를 대신하여 전국을 돌며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격려했다. 국가 위기에 전란 극복의 공적을 쌓았기에 그 공을 인정받아 1608년 광해군은 드디어 조선 제15대 왕이 됐다.


◇궁궐이 불에 타다.

1623년(광해군 15) 인조반정(仁祖反正)이 일어났다. 반정(反正)이란, ‘정통으로 돌아간다’,‘정도를 회복한다’는 뜻이다.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유폐하고, 영창대군을 죽인 이른바, ‘폐모살제(廢母殺弟)’가 반정의 명분이 됐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묘호(廟號)를 받지 못해 ‘군’으로 불렀으며, 광해군에 대한 기록은 ‘실록’이 아닌 ‘일기’라 부른다.
 

◇강 물결 외딴 배

조선시대 ‘원악도’,‘절해고도’로 불렸던 제주. 1637년 6월 6일 광해군이 탄 배가 제주도 어등포(지금의 행원포구)에 당도했다. 광해군의 제주 유배지에는 가시 울타리가 둘러쳐졌다.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도록 방문을 닫아 막고 자물쇠까지 채웠다. 


◇빛의 바다로 간 광해

광해(光海), ‘빛의 바다‘라는 이름처럼 바다로 둘러싸인 섬, 제주도에서 결국 숨을 거뒀다.
광해군이 눈을 감은 1641년 음력 7월 1일을 전후해 제주 땅에는 ‘광해우(光海雨)’가 내렸다. 농사를 짓는 제주 백성들이 불볕더위로 인하여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애타는 중에 내리는 큰 비였다. 백성들은 광해군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광해군이 죽어서 내려주는 단비라 여겼다. 

이날 박물관에 방문한 한 일본인 관광객은 “배우 이병헌이 주연인 ‘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를 본 기억이 있어 이번 전시회에 왔다. 영화에서는 보지 못한 광해군의 마지막 모습도 알 수 있게 돼 좋은 시간이었다”라고 말했다.

정세호 민속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이번 전시는 광해군의 제주 유배와 관련한 콘텐츠를 발굴하는 첫 단계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소재로 활용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전재민 기자  webmaster@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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