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1.27 수 11:59
상단여백
HOME 기획 포토뉴스
제주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인 제주4ㆍ3“장소 답사 통해 당시 시대의 분위기 느낄 수 있어”
“모두에게 기억되는 4ㆍ3이 됐으면”

≫신문방송사 학생기자 4ㆍ3 유적지 순례

신문방송사는 10월 25일부터 이틀간 제주 4ㆍ3평화재단(이사장 양조훈)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의 역사인 제주4ㆍ3사건을 알아보기 위해 4ㆍ3 유적지 탐방을 다녀왔다. 〈편집자주>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10월 25일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무렵, 학생기자들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는 4ㆍ3당시 소멸된 잃어버린 마을중 하나인 ‘곤을동’으로 향했다. 기행은 학생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김성용 해설사와 함께 진행됐다. 그는 “4ㆍ3은 발생한지 올해가 71주년이지만 세상에 떳떳하게 공개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며 “지금은 육지에서도 4ㆍ3사건에 대해 알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 학생기자들도 이번 기회를 통해 많이 배웠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4ㆍ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4ㆍ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미군정기에 발생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학생들은 김성용 해설사에게 대한민국 수립 과정, 4ㆍ3이 발생하게 된 이유와 4ㆍ3사건의 의의에 대해 들으며 제주4ㆍ3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몇 분뒤 버스는 곤을동에 도착했다. 항상 물이 고여 있는 땅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한 곤을동은 1949년 1월 4일 군 작전으로 선량한 양민들이 희생되고 온 마을이 사라졌다. 국방경비대 제2연대 1개 소대는 곤을동을 포위했고 주민들을 전부 모은 후 10명을 바닷가로 끌고 가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웠다. 이렇게 사라진 마을은 제주도에 100여개가 넘는다. 

김성용 해설사는 “곤을동 주민들은 화북포구에서 어업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며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이 한순간에 재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북촌리 학살의 살아있는 현장

버스를 타고 북촌에 위치한 너븐숭이 기념관으로 이동했다. 1949년 1월 17일에 남녀노소 300여 명이 한번에 희생됐다. 바로 북촌리 주민 대학살 사건이다. 너븐숭이 기념관은 이렇게 희생된 430여명을 추모하는 장소다. 기념관 밖에 있는 애기무덤, 순이삼촌 문학비를 통해 당시 북촌리에서 발생한 사건들의 끔찍함을 알 수 있었다. 기념관 안은 당시 북촌리 학살사건의 배경과 과정 등 4ㆍ3사건 당시 북촌리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학생기자들은 애기무덤과 당시 현장을 간접적으로 느낄수 있는 순이삼촌 문학비 등을 보며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4ㆍ3평화공원 방문과 참배

학생기자들은 봉개동에 위치한 4ㆍ3평화공원을 방문, 희생자들에 대한 참배와 1층에 위치한 전시관을 구경했다. 학생들은 위령재단에 재를 올리며 희생영령들을 애도했다. 이후 위패봉안실에서 희생자 명단을 살펴봤다. 

김성용 해설사는 “4ㆍ3으로 인한 사망자를 약 3만 여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봉안실에는 1만6000여개의 이름밖에 없다“며 “그 이유는 당시 4ㆍ3희생자라고 하면 빨갱이라는 낙인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초토화작전으로 인해 중산간 마을의 피해가 컸다”며 “그중 피해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은 북촌리, 노형리, 가시리다”고 덧붙였다.

위패봉안실에서 나온 학생들은 평화공원 1층에 자리하고 있는 기념관을 구경했다. 기념관에는 4ㆍ3의 발발, 전개, 결과, 진상규명운동까지 전 과정이 차례로 펼쳐져 있어 4ㆍ3사건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됐다.

대전이 고향인 박지욱(교육방송국 보도부장)씨는 “4ㆍ3이 비극적인 사건이라는 걸 글로는 알고 있었지만, 여러 장소를 답사하며, 단지 그 순간의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단 사실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그런 면에서 다른 역사적인 사건까지도 앞으로는 더 민감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전북 정읍출신인 전재민(제주대신문 학생기자)씨는 “4ㆍ3은 늘 제주에 국한됐고 한국 역사에서 배제됐다. 이번 4ㆍ3 유적지를 탐방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마주했다”며 “법정기념일로 지정되기 까지 얼마나 많은 분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는지 알게 됐다. 앞으로 4ㆍ3이 모든 대한민국 국민에게 인식되는 날이 왔으면 한다”고 밝혔다. 

학생기자들이 10월 25일 4ㆍ3평화공원에서 4ㆍ3해설사로부터 사건의 발단과 경과 등을 듣고 있다(위). 잃어버린 마을인 ‘곤을동’ 터(아래).


 

김해건 기자  webmaster@jejunu.ac.kr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