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범 지리교육전공 4

필자의 세대나 젊은 직장인들 사이에서 욜로, 욜로족, 욜로 라이프가 유행하고 있다. 욜로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인생은 한번 뿐이다’를 뜻한다. 그리고 한국사회는 이러한 욜로를 원래의 의미에서 확장해 일종의 소비 트렌드로 받아들이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추구하는 욜로는 대부분 과감한 결단이나 과소비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이 자아실현에 관계되었든 아니든 간에 현재의 자신이 행복해질 수 있다면 약간 부담되는 수준이라도 과감하게 행동한다.

예컨대 혹자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홀연히 여행을 떠난다. 자신이 받는 임금 수준에 비해 부담될 정도로 비싼 상품을 사는 경우도 있다. 요컨대 이들에게 욜로는 회사를 그만두게 하는 용기이자, 과소비를 해도 좋다는 허락이다.

현재 한국사회의 욜로는 미래의 경제적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란 회의주의적 인식에서 나왔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이러한 유행이 이해되기도 한다. 만약 지금보다 미래가 더 확실하고 전망이 밝았다면, 그 누구도 겨우 얻어낸 직장을 과감히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또한 임금수준에 비해 과도한 소비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과소비의 형태로 드러나긴 해도 그것이 자아실현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의 깜냥에 비해 부담되긴 하지만 보고 싶은 공연을 보고나서 느끼는 여운이 그렇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런 경우는 흔치않다. 자신의 비합리적 소비 패턴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더욱 많은 것 같다.

나는 욜로가 싫다. 소비 트렌드로서의 욜로가 우려스럽다. 이런 방식의 욜로는 현재를 위해 ‘소비하지 않는 주체’를 의미 있는 존재로 상정하지 않는다. 또한 (특히 소비행위를 중심으로) 존재의 내용이 어떻게 채워지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을 뿐, 존재 자체가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자는 욜로를 철학적 차원에서 재해석할 것을 제안한다. 실존주의적 관점에서 욜로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해석될 수 있다. 이는우리 삶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던지는 말이 된다. 

우리의 삶은 유일하고 독자적이며 일회적이다. 그리고 욜로는 이를 사랑하는 태도다. 죽음이라는 부조리 앞에서 ‘지금여기’를 힘껏 살아내는 강인함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자신을 소외시키기보다는 현재의 나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철학적 의미의 욜로는 소비해도 좋다는 ‘허락’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성찰, 그리고 용기다. 그런거라면, 나는 욜로가 좋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