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과 삶의 의미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아야

소확행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줄인 말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가능한 행복이나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을 뜻하는 유행어이다. 2018년 인크루트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소확행이 유행어 1위를 차지하였다. 평범한 행복, 소소한 가치에 집중하는 말에 사람들이 공감한 것이다. 거창하고 오랜 기간 준비해야 하는 커다란 이상을 추구하느라 모든 것을 뒤로 미루는 삶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지금 확실하게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작은 기쁨의 가치를 중시하는 단어이다. 그런데 문제는 소확행을 너무 강조하다보면 소소한 행복을 달성하지만 삶의 의미를 충족하는 또 다른 행복은 놓치기 쉬운 것에 있다. 

키와 몸무게는 직접 눈으로 측정할 수 있지만 추상적인 행복은 측정하기가 어렵다. 처음에는 학자들이 행복을 직접 측정하는 대신에 소득 같은 경제적 지표를 이용하였다. 경제적 수준과 행복이 단순 비례 관계가 아닌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에 가계소득 6만 달러까지는 소득과 삶에 대한 만족도 사이의 상관관계가 매우 높지만 6만 달러를 넘어서는 순간 상관계수는 0으로 나타났다. 일본과 중국의 경우에도 경제 소득은 꾸준히 향상되었지만 사람들의 행복수준은 제자리걸음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지표 대신에 주관적인 행복을 측정하는 연구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행복에 관한 심리학자들의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한 부류의 학자들은 일정한 시간(예를 들어 25분)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을 보고하도록 하여 행복의 수준을 측정하였다. 또 다른 부류의 학자들은 측정하는 바로 전날의 경험들을 기억하게 한 다음에 감정적 측면에서 어떻게 느꼈는지 보고하도록 하여 행복의 수준을 측정하였다. 

삶을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적분과 같다고 보면 ‘순간 측정’ 방식에 동의하게 된다. 순간 측정 방식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영화관에서는 휴대폰을 끄고 영화에만 집중하고, 친구와 말할 때는 친구에게 집중함으로써 현재를 즐기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삶을 추구하게 된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그 때를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소중하다. 부모가 살아있을 때는 찾아오지 않다가 부모가 사망한 뒤에 열심히 제사 지내러 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행복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부모 살아있을 때 효도가 부모 돌아가신 뒤에 제사보다 더 중하다. 

그런데 인간은 현재의 순간적인 행복만 추구하는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어항 속의 금붕어와 달리 사람의 두뇌는 어려운 문제를 풀고 의미를 부여하며 미래를 상상하는 전두엽을 발달시켜 왔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정하고 있는 산악인을 대상으로 25분마다 행복을 측정한다면 분명 그 사람의 행복수준은 밑바닥이겠지만 정작 산악인에게 행복감을 묻는다면 불행하다는 대답을 기대하기 어렵다. 빅터 프랭클, 에이브러햄 매슬로, 프리드리히 니체, 알베르 카뮈 등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 스스로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다. 이들 모두는 찰나의 쾌락과 즐거움을 넘어서서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더 높은 존재가치와 행복을 가져온다고 보았다. 에리히 프롬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말고 존재 자체로 받아들일 때 관계는 더욱 깊고 오래간다고 보았다. 즐거움과 쾌락만 좇다보면 정작 의미 있고 충만한 행복과 멀어진다. 

바위가 산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산 위로 밀어야 하는 시지프스 신화처럼 사람에게는 힘든 것을 감내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갈릴레이는 46세에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였다. 밤하늘의 달은 항상 같은 면이다. 이는 틀렸다. 달의 공전궤도는 타원이라서 공전속도가 일정하지 않다. 이 때문에 달 뒷면의 일부분도 보이는 달의 칭동현상이 생긴다. 73세였던 갈릴레이는 미세한 떨림으로 알아차리기 힘들었던 달의 칭동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이듬해에 갈릴레이는 시력을 잃었다. 행복은 소확행만 좇아도 안 되고 무조건 미래만 좇을 것이 아니라 소확행과 삶의 의미 중간에서 균형을 잘 잡을 때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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