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길, 다른 삶을 묻는다    < 5 > 문재웅 영화감독

  문재웅 영화감독이 인터뷰 하고 있다.

삼수 끝에 제주대로 왔다. 영화를 전공하고 싶어 거듭 입시를 준비하다, 성적에 맞춰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학교생활은 의외로 즐거웠다. 전공 특성상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잘 맞았다. 게다가 자연에 둘러싸인 캠퍼스도 창작에 영감을 주었다. 기회가 닿아 일본과 필리핀에서 또래들을 만나 단편 영화 작업을 하면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굳었다. 정치외교학과 10학번 문재웅 영화감독의 이야기다.

그렇게 만든 단편영화 <포구>로 제70회 칸 영화제 비경쟁 단편영화부문(Short Film Corner)에 공식 초청돼 칸에 다녀왔다. 고민과 경험이 쌓이면서 2018년에 발표한 단편영화 <김녕회관>은 전국 각지에서 열린 6개 영화제에 초청되며 호평을 받았다.  가족들의 응원과 우려 속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을 것인가, 그 고민은 결국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믿는다. 최근에는 시나리오 작업과 교육 활동을 병행하며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을 소개해 달라.

장편 영화 시나리오 대본 작업을 하고 있다. 교육도 하고 있다. 당장 영화나 대본으로는 돈을 벌기 어려우니 교육하면서 강사료로 용돈 벌이를 하고 있다. 아직 캥거루족을 벗어나지 못했다.

▶원래 영화감독이 꿈이었나. 대학 전공과 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선택했다. 영화과를 전공하고 싶어서 유명한 대학도 고려했지만 수능 점수도 맞출 수 없을 것 같았고 한다하더라도 부모님이 학비를 마련하기 부담스러울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준비했지만 첫 해에 떨어지고 재수해서 떨어지고 삼수를 해도 떨어졌다. 영화를 전공하지 않으면 영영 영화는 못 할 줄 알았다. 대학은 가야겠다는 생각에 외국 다니는 걸 좋아하니 외교관이 되겠다는 생각에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제주대에 온 것에 만족했다. 캠퍼스가 산속에 있다는 게 정신적인 안정감을 줬다. 학과 전공도 암기하는 학습이기보다 책을 다양하게 읽고 발표하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좋았다. 10학번으로 입학하고 군대를 바로 갔다. 군대에서 영화배우인 동료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색하면서 영화를 만들 욕구가 샘솟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배우는 것들이 영화작업과 별개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즐겁고, 재미있게,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만나고 가치관들도 공유하며 지냈다.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영화 연출을 하기 위해서 어떤 경험들을 쌓았는지 궁금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제주영상위원회에 들락날락했다. 군대에서 전역할 때쯤 2012년에 소개받은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나는 일본과 한국의 젊은 영상인들을 초대해서 같이 영화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후쿠오카현 사가시에 갔는데 외국인과 소통하면서 작업하는 것이 좋았다. 그게 좋은 기회로 연결돼서 필리핀에서 한국을 비롯해 아세안국가 출신 22명이 모여서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그 프로그램 출신이라는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다녀오고, 네트워크가 생겨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그때 만난 친구들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 받고 칸영화제에서 만나고 성장하는 걸 보니 나는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단편 작업을 하면서 대본 쓰고 제주영상위원회에서 지원해주는 영화제작지원금을  받아서 작업을 했다. 2017년 <포구>를 찍고 칸 영화제에 가게 됐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더 소중했던 경험은 칸영화제에 온 대단한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방향으로 개선하면 좋을지 포인트를 얻었다. 유럽에 간 김에 오래 머물러야겠다 싶어서 4~50일 이탈리아와 프랑스로 배낭여행을 다녔다. 미술책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을 보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난 앞으로 무슨 작업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영화를 넘어서 영감을 주는 예술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김녕회관>이다. 내용은 지금 생각해보면 개선이 필요하지만 연출적인 입장에서는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작품이었다. 작품 접근 방식이 좀 더 성숙해졌다.

이 영화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북독립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 대전독립영화제, 제주영화제, 제주혼듸영화제에서도 상영하고 상도 받았고, 포스트핀 후반제작지원을 받아서 올해 난생처음 좀비영화에 후반작업을 의뢰하게 됐다.

▶영화감독으로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자질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는데, 그걸 실현하려는 실행력이 필요하다. 실행력이라고 하면 영화제작이란 게 만만하지 않은데, 내가 이렇게까지 고생하면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도 이걸 뚫고 창작에 관한 강렬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소통능력이 있는가. 대부분 아티스트는 자기 속에 매몰되어있는 사람들이 많다. 영화는 공동작업인데, 소통이 제대로 되어야 각자 가진 재능을 끌어낼 수 있다.  단편 영화도 예술이니 짧은 작업이기도 하다. 연출자의 창의력 요소가 많이 들어가는 분야이니 많은 사람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큰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많은 사람, 소통능력이 중요하다. 어떻게 해서 자아와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면서 좋은 작업을 만들어갈까 고민하지 않으면 창조력만으로는 작업을 완성하기 힘들다. 어느 배를 모는 선장의 마음으로 선원들을 다독거릴 리더십이 없으면 항해하기 힘들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큰 성취는. 특별히 아끼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은.

아직도 영화감독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영화를 만들고 있는 예술가라고 하기도 부끄러운데 작가 같다. 영화감독이라는 건 감독이라고 불리고 싶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대중예술이고 혼자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극장에서 즐길 수 있는 정도가 됐을 때 영화감독이라고 하는데. 아직 그런 칭호는 낯부끄럽다.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단편 영화를 만들어서 불리는 것보다 스스로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 가운데서 가장 큰 성취라고 느꼈던 건 고3때 만들었던 첫 작품 <인형의 꿈>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데 친구들이 나도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제작을 완수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들었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학생이 학교에서 빠져나가서 영화를 만 지루한 나머지 꿈을 꿨다. 친구들을 데리고 학교를 도망치는 내용이다.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서 해소해서 대리만족을 하는 동시에 창작에 대한 욕구를 현실화시키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었다. 짧아서 지금은 눈감고도 만들겠지만 그때는 그것도 1년이 걸렸다. 과제로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힘들지만 혼자 해내려고 했던 게 영화를 하는 기반이 됐다.

▶작업을 하면서 가장 제약을 느끼는 부분은.

아무래도 동료일 수 있는 가족들이다.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내가 영화를 한다는 걸 용납할 때까지 오래 걸렸다. 당장이라도 포기하고 공무원이 된다고 하면 반길 분들이다. 영화를 한다고 하면 제주도뿐만 아니라 서울에 있는 친구들도 공통적으로 갖는 두려움이기도 하다. 5년을 공무원을 준비한다고 했을 때와 반대로 영화로 5년 동안 칸영화제 5번 가도 부모님께서는 걱정할 것이다. 이것이 돈으로 연결될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끊임없이 확신을 가질 때까지 발버둥을 쳐야하는 것 같다. 스스로 납득하고 확신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혹은 하고 싶은 것은.

<인간사냥>이라고 하는 작품은 단편인데 장편으로 만들고 싶어서 만드는 프리퀄이다. 영화제에서 선정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발맞춰서 투자를 받을 수 있게 준비하고 싶다. 운이 좋으면 내년, 미뤄지면 내후년쯤 촬영을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3년 내에는 장편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일 수 있는 시간이 오지 않을까. 투자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일을 병행하면서 작업할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아예 다른 예술 분야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 자체에 목매고 싶진 않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유리해지지 않을까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앞으로도 창작욕을 해소하려고 할 것이고, 썼던 작업들은 현실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