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축시

      그곳이라는 새해 
                                     현택훈 시인

  너와 나는 여름나라로 갈 거야
  그곳은 눈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차가운 나라
  키 큰 망고에 흩날리는 함박눈
  우리 그곳에서 새로운 망명정부를 세우자
  우리는 멸망한 왕조의 검푸른 이끼처럼 살아왔잖아
  그러니 이제 생일 대신 축하할 날을 찾자
  토끼의 해에 태어났든 고양이의 해에 태어났든
  염소의 해에 태어났든 양의 해에 태어났든
  우리는 저 바다를 함께 건널 거야
  일 년 동안의 항해로 쓸쓸해지는 배는 괜찮아
  유빙이 적도까지 떠내려와 우리를 당황하게 하지만
  아버지처럼 담담해질 필요도 있어
  나와 너는 여름나라로 갈 거야
  겨울에도 어깨를 드러낸 블라우스를 입고
  바람 알갱이들이 씹히는 샌들을 신을 거야
  그곳은 눈이 소나기처럼 내리는 나라
  영사관 직원은 물소의 눈을 가진 사람
  여권을 잃어버렸다면 우체국에 가서 
  새 지도를 받아 자전거를 타고 국경에 가자 
  기타 소리는 활엽수로 자라지 
  파도처럼 밀려오지 
  이 물결은 12월 26일을 닮았어
  네게는 아직 번역되지 않은 문장이 있어
  기린은 겨울나라에서 왔어
  도서관 유리창 성에가 얼어붙은 눈물이겠지만
  북 치는 소녀와 함께 가자 
  눈물이 녹아 수원(水源)을 만드는 
  그곳은 여름으로 가득
  이곳은 따뜻한 바다로 가는 
  서늘한 경적(警笛)을 모아둔 곳
  오늘부터 해를 삼킬 수 있네
  세상 모든 오르막길을 오른다 해도
  오늘부터 해를 호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다
  네가 버스 차창 밖을 보다가 고개를 내게 돌릴 때 
  너에게 이 살얼음 낀 해를 내밀게
  이 영하의 단풍 같은 해를 
  나에게 내밀어 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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