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에 있던 친구가 30 여 년 전에 한 말이다. 시론 원고를 부탁 받고 글쓰기를 고민하다가 “시론이 논문보다 쓰기 힘들다. 다음에 쓰면 안 되니?”에 대한 대답이“그냥 써라”였다. 그래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냥 썼다.

그렇게 시작한 시론을 제주일보를 시작으로 농민신문, 한라일보에 200편 넘게 써 왔다. 자연히 시론 주제에 맞는 자료를 찾는 요령도 생기고 글에 음률이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글에도 박자가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안다. 맞춤법이 걱정되면 인터넷을 찾아보면 된다. 모든 일은 이렇게 부족한 면이 있어도 그냥 시작하는 습관이 중요한 것 같다.

“그냥 써라”라는 말을 대학원 제자들에게도 한다. 너무 완벽하게 논문을 쓰려고 하면 못 쓴다. 좋은 논문은 끝마친 논문이지 머릿속에 있는 게 아니다. 완벽한 논문을 쓰려면 평생 못 쓰니까 연습하는 기분으로 써라. “그냥 쓰는 습관”부터 들여라. 그런 다음에 다듬어라. 시작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한다. 처음부터 높은 기준을 세우면 시작하기 힘들다. 팔굽혀 펴기를 100번 씩 하려고 계획을 세우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금방 지치기 때문이다. 결과가 나쁘면 실망도 크다. 시간 날 때마다 몇 번 씩 팔굽혀 펴기를 한다는 계획을 세우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습관의 재발견을 쓴 스티븐 기즈는 큰 목표를 세우는 것보다 “그냥 시작하는 것”을 강조한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약 300만 년 전에 시각과 청각과 관련된 중뇌가 발달하였는데 방어역할도 한다고 한다. 즉, 외부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발생하면 위험으로 인식해 그 행동을 저지하는 자동방어시스템이다. 

그래서 큰 계획보다는 작은 계획이 효과적이다. 큰 스텝이 아니라 작은 스텝으로 사뿐사뿐 시작하는 small step이 뇌의 방어기능도 모르게 시작할 수 있다.

도서관에 가서 몇 시간 공부하겠다는 계획보다 그냥 도서관에 가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TOEIC 학원을 다닐까를 고민하는 것보다 그냥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하는 것이 우선이다. 거창하게 계획하는 것보다 작은 목표라도 그냥 시작하는 것이 나도 모르게 습관이 되고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30여 년 넘게 제주대학에 근무하면서 큰 계획도 있었고 그냥 시작한 것도 있다. 담배를 끊겠다는 큰 계획은 아직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냥 시작한 농업인 교육용 만화는 20년 넘게 그리고 있다. 큰 계획 없이 시작한 네이버밴드는 매년 쌓이는 자료가 5만 쪽이 넘는다.

내년이면 필자도 사회 초년생이 된다. 웹툰이나 유튜브를 시작하기로 계획하고 남보다 잘 하는 방법을 찾다가 그냥 시작하기로 했다. 허술해도 그냥 시작하는 작은 시도가 습관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학생일 때는 계획을 세웠다면 그냥 시작하는 것이 훌륭한 결과를 얻을 것이다. 시작은 습관을 만들고 다듬어지면서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제주대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