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3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나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권유성
국어교육과 교수

다시 봄이다. 그리고 다시 4ㆍ3이다.

따뜻한 남쪽나라로만 생각했던 제주의 겨울이 생각보다 춥고 힘든 계절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주의 겨울이 더 춥고 혹독하게 느껴지는 것은 4ㆍ3시를 통해 접한 무자-기축년의 겨울이 뇌리에 너무 깊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무방비상태로 산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그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해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올해로 제주4ㆍ3은 72주년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4ㆍ3이 대한민국에서 완전한 시민권을 얻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주4ㆍ3의 공식적인 명칭이 여전히 ‘사건’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민주사회에서 이름 없이 시민권을 얻을 수는 없다. 그리고 ‘사건’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라 ‘이름의 이름’, 즉 중립적인 기표 그래서 조금은 공허한 기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사건’이라는 이 중립적인 기표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이 필요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라는 조금은 공허한 기표가 3만 여에 이르는 목숨을 바칠 만한 제단이 될 수 없다는 점 또한 너무나 자명하다.

제주4ㆍ3은 이념의 문제나 분단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초과분을 가진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념의 문제를 초과하는 4ㆍ3의 문제라는 것이 무엇일까?

4ㆍ3시에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제지받지 않은 무자비한 폭력과 그 폭력 앞에 벌거벗겨진 채 내던져진 수많은 생명들의 고통과 공포가 고스란히 형상화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4ㆍ3의 문제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오늘날을 가능하게 했던 결정적 순간에 자행된 거대한 폭력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취향이 다르고,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르고, 서로 다른 것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종종 서로 다투고 미워하고 논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런 차이들 때문에 서로를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며, 그렇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4ㆍ3에서는 이런 차이들이 서로를 죽이는 이유가 될 수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어떤 상황이 이런 사유와 판단을 가능하게 만들었는가?  지금 우리가 바로 여기서 여전히 4ㆍ3을 기억하고 연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가 나는 이 질문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무엇이 4ㆍ3을 가능하게 했는가?”라는 질문.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여전히 4ㆍ3을 이야기하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기 위한 것도, 불행을 곱씹기 위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다. 수많은 죽은 자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4ㆍ3시들을 읽으며 종종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이들이 죽어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억울하다고, 죽고 싶지 않다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물론 인간이라면 그런 생각도 했으리라. 그러나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던 무도하고 거대한 폭력 앞에 벌거벗은 생명으로 던져졌을 때,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비록 험한 세상 만나 이렇게 죽지만, 내 자식들만은 내 후손들만은 부디 봄날처럼 따뜻한 평화로운 세상 만나,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은 대로 살았으면 하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간절히 기원했을 그런 삶이 어떤 삶인지, 그것이 가능한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우리는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그것이 4ㆍ3이 여전히 ‘사건’으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고 보인다. 그들이 꿈꾸었고 우리가 만들어갈 새로운 세계가 적어도 ‘4ㆍ3이 불가능한 세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여전히, 지금 여기서 4ㆍ3을 읽고 공부하고 논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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